그런데 당신이 아는 그런 차이는 아니다
팀에 처음 배치받던 날, 나는 신의 직장이라는 말이 가진 효능을 믿었다.
여기까지 들어온 사람들은 이미 여러 번 검증을 통과했을 테고,
그래서 나는 배울 준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격증이 있고, 연차가 있고, 무엇보다 “여기 오래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오래 남아 있는 건 대개 능력의 결과라고, 나는 그런 쪽을 더 믿는 사람이었다.
첫 실적 마감 때, 그 믿음에 작은 금이 갔다.
“정 사원님, 지금 그 숫자 맞아요?”
마감 당일, 회계팀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른 손가락을 잠시 멈췄다.
“어느 항목 말씀하시는 건가요?”
상대는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익이요. 입력이 안 맞아요. 지금 시스템에서 튀어요.”
나는 모니터 속 팀원들이 공유해 둔 실적 입력표 파일을 열었다.
빈칸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빈칸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먼저 들어온 건, 빈칸의 양이었다.
기입해야 할 칸이 아니라 기입된 칸을 세는 쪽이 빠를 정도였다.
나는 파일을 다시 확인했다.
버전을 잘못 열었나, 공유 폴더 경로를 헷갈렸나.
오늘이 마감일이 아닌가 하는 헛된 희망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보통 희망은 빗나갔다.
“정 사원님, 지금 마감해야 돼요. 여기서 더 늦어지면 IT 쪽도 같이 밀려요. 확인해서 바로 콜백 주세요.”
회계팀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전화가 끊겼다.
‘콜백’이라는 단어는 부드러운 영어지만, 뜻은 늘 같았다. 지금 당장.
나는 옆자리 선배를 바라봤다. 선배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는 하고 있나 보다. 나는 입을 열었다.
“선배님, 지금 실적 입력이…”
선배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아 그거… 현석 씨가 좀 봐줘.”
“아니요, 아직 입력이…”
“응, 그거 오늘 마감이지? 잘 좀 맞춰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선배는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화면에는 엑셀이 아니라 메신저가 떠 있었다.
동기들과의 채팅창. 그 안에서는 점심 메뉴와 주말 약속이 오갔다.
혼란이 왔다. 지금 이 상황이 이 사람에게도 같은 상황인가?
같은 파일을 보고, 같은 마감일을 알고, 같은 회계팀 전화를 듣고 있는 게 맞나?
나는 다시 팀원들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입력하셨어요?” 같은 종류의 질문을,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답은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와도 애매했다.
“그거 오늘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아 그거 현석 씨가 알려줬는데 까먹었다, 이번엔 현석 씨가 좀 해줘”
나는 결국 팀원들의 숫자를 대신 입력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입력 칸을 하나씩 채우고, 오류 메시지가 뜨면 원인을 찾아서 고치고를 반복했다.
회계팀에 콜백을 했다.
“지금 수정 중이고, 조금만 더 시간 주시면….”
“정 사원님, 지금 ‘조금만’이 몇 분이에요? 오늘 마감이잖아요. 지금 이 상태로는 인터페이스 못 돌려요.”
나는 사과를 했다. 내가 직접 만든 오류가 아니니 죄송하진 않았지만, 사과가 가장 빨랐다.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은 뒤 자리로 돌아오는데, 옆자리 선배가 나를 불렀다.
“현석 씨, 실적은 다 잘 맞췄어?”
나는 잠시 서 있었다. 방금 그 선배가 놓친 오류 때문에 회계팀에서 욕을 먹고 오는 길이었다.
이 질문은 도발도 아니고, 괴롭히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의도 자체가 없다는 게, 오히려 더 분명했다.
그냥… 순수하게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관심이 없으니 죄책감도 없고, 죄책감이 없으니 방어도 없다. 방어가 없으니 오히려 평온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선배님, 지금 선배님 담당 쪽에서 차액이 있어서요,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어디 보면 된다고? 고치는 법 좀 다시 알려줄래?”
차액 수정이 끝나자 선배는 다시 자기 일상으로 돌아갔다.
마치 내가 고생한 게 이 팀의 정상적인 프로세스인 것처럼.
그날 밤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첫 번째에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신입이니까.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겠지.
내가 선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겠지. 내가 말을 더 정확하게 했어야 했겠지.
다음 달에는 더 잘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팀원들에게 다시 설명했다. 이번에는 말로만 하지 않았다.
파일을 캡처했고, 입력 순서를 번호로 매겼고, 오류가 뜨는 경우의 수를 정리해서 그림으로 붙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엄밀한 방식으로.
그리고 다음 달, 더 큰 금이 갔다.
같은 칸이 또 비어 있었다. 같은 종류의 오류가 또 났다.
회계팀은 이번엔 전화로 끝내지 않았다. 회계팀장이 우리 팀 자리로 직접 올라왔다.
문이 열리고, 회계팀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야 신입, 너 때문에 지금 전체 일정 다 밀리고 있잖아!”
급하게 팀원들의 오류를 대신 처리하는 와중, 상사는 당연히 나의 실수와 책임이라는 듯 말했다.
"그래, 해보니까 공부 머리랑 일 머리랑 다르지?"
공부 머리라, 그렇다. 학교와 회사는 분명히 달랐다.
학교에서는 무지한 사람이 책임을 졌다.
시험을 못 풀면 학점이 떨어지고, 학점이 떨어지면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악착같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모의고사 자료를 아끼고, 서로의 풀이를 탐내고, 때로는 숨기면서까지.
그런데 여기서는 아는 사람이 떠맡고, 아는 사람이 소모됐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남아도 되고, 아는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됐다.
반년 정도 팀원들의 오류를 대신 떠안고 회계팀장의 고성을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상사에게 보고를 했다.
대기업이면 이런 종류의 문제는 사람의 성실함이 아니라 프로세스로 막힐 거라고 믿었다.
누군가 한 번 메워주면 다음부터는 그 자리가 ‘원래 비어 있던 자리’가 되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팀원들이 내 수고에 익숙해지는 게 두려웠다.
더 큰 사고가 났을 때, 메우는 사람도 같이 무너질 테니까.
상사는 내 말을 다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아, 이건 해결되는구나’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학교에서는 규칙이 깨졌을 때 누가 깨뜨렸는지 확인하고,
그 사람에게 점수를 깎거나 벌점을 주거나, 적어도 “다음에는 그러지 마”라는 경고가 돌아갔다.
신상필벌은 잔인하지만, 최소한 단순했다.
그다음 날 부랴부랴 저녁 회식이 잡혔다.
영문도 모르고 팀원들과 저녁을 먹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상사가 말했다.
“정 사원이 요즘 업무 때문에 힘들대.”
상사는 팀원들의 잦은 업무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다.
다만 프로세스의 개선을 비밀리에 요구한 내가 주어로 등장했다.
상사는 이어서 웃듯이 덧붙였다.
“잘 좀 도와줘. 우리 팀이 원래… 좋게 좋게 가야 돼.”
좋게 좋게.
그 말은 따뜻한 포장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방향을 바꾸는 레버였다.
벌점을 줄 자리에 미소를 얹고, 책임을 묻는 자리에 배려를 얹고,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문제를 완충하는 쪽으로. 그리고 그 완충은 늘 같은 방식으로 작동했다.
더 잘 아는 사람, 더 빨리 하는 사람, 더 신경 쓰는 사람이 그 완충재가 된다.
나는 그 자리에서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제가 힘든 게 아니라 팀의 프로세스가 무너진 거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길어진 말은 변명처럼 들린다.
그날의 보고는 해결이 아니라 공유로 끝났다. 정확히는, 나의 ‘개인적 힘듦’이 팀에 공유되었다.
대기업에서 오래 몸담았다는 사실이 반드시 능력이나 책임의 증거가 되는 건 아니었다.
고용 안정성이 주는 시간 속에서 사람의 각은 조금씩 무뎌졌다.
입사 초의 패기와 총명함은 성과 대신 생활로 옮겨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좋은 직원’보다 ‘안정적인 사람’이면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마감이 터진 오후에도, 회계팀의 전화가 빗발치는 저녁에도
그들은 퇴근을 기다리며 주식 차트를 열었고, 부동산 뉴스를 보고, 아이 학원 상담 일정을 조정했다.
그건 틀린 삶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더 현실적인 삶이었다.
다만 그 삶이 회사 안에서는 너무 강한 방패가 되었다.
“여기 오래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신분은, 성과보다 먼저 보호받는 자격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회사는 그들을 크게 말리지 않았다. 말린다는 건 비용이 든다.
갈등 비용, 인사 비용, 그리고 분위기라는 비용.
회사가 자랑하는 안정성은 직원의 복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직이 선택한 운영 방식이기도 했다.
불필요한 파열을 막고, 웬만하면 유지하고, 웬만하면 넘어가는 것.
나는 그들이 게으르거나 무능하거나 나빠서 일을 안 한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그들은 이 회사의 보상 체계 내에서 가장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수행 중일뿐이었다.
오류는 그들이 아니라, 그 알고리즘을 깨뜨리려 한 나였다.
그리고 이 구조는, 나 같은 일개 직원이 분노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는 구조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