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충 2. 비유의 힘

by durumi

언어를 깊게 공부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한번 인간의 언어능력 중 뛰어난 것 중 하나가 '비유'라고 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국립국어원에 등재된 비유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

라고 설명하고 있다.

비유의 목적은 설명 대상의 이해를 돕기 위함 또는 그 의미를 더 풍부하게 전달하기 위함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수많은 인간이 모여 살고 있는 이 사회 안에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언어'를 배운다.

언어라는 상징체계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사회가 정한 규칙을 배우며 사회적 동물로서의 기본기를 익히고,

나의 의사를 전달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내적 성장을 이룬다.

이처럼, 모든 언어와 이 세상의 규칙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형성된 것들이기에,

배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배움에도 단계가 존재한다.

그 배움이 고차원으로 진행될수록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열쇠가 '비유'인 것 같다.

비유가 없다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결국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낙오자가 생길 수도 있다.

비유는 이러한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

첫째로, 비유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하여 새로운 정보의 큰 틀을 제공한다.

글을 읽을 때 마치 제목을 알고 글을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 가독성에 차이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두 명의 국어선생님을 예로 들어본다면,

A: 얘들아, 지문에서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이 문단에서만 찾으려고 하면 당연히 안 되겠지? 화자가 말하는 중심주제는 이 글 전체를 관통해서 무얼 얘기하고 싶은지를 말하는 거야. 글을 문단으로만 쪼개서 보면 당연히 주제가 안보이겠지? 글 전체를 봐야 해 전체를.

벌써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지루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더라도 내용이 와닿지 않는다.

B: 얘들아, 지문에서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할 때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해. 내가 보고 있는 나무 하나가 붉다고 해서 숲 전체가 붉지 않을 수도 있겠지? 즉, 문단 하나가 화자의 의도를 모두 담고 있지 않아.

깔끔하다.

이해하기 쉽다.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비유를 통해 선생님의 발화 내용이 하나의 이미지로 연상된다.

선생님의 발화 목적이 무엇인지 큰 틀이 잡힌다.

그 틀을 바탕으로 내가 푸는 지문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쉽게 이해된다.

또 다른 비유의 장점은

예시적 기능이다.

이러한 기능은 특히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이론적 학문에 유용하다.

초등학교 때의 일례를 들어본다면,

6학년 때 처음으로 '농도'에 대한 개념을 배웠다.

소금물의 농도는 (소금의 양)/(소금물의 양)*100 (%)라고 배웠다.

이게 소금물의 농도라고 정의했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의는 알겠으나, 문제 풀이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문과적 소양이 너무 뛰어나 이과적 소양은 밥 말아먹은 초등학생 나부랭이였던 나는

황당한 의문 하나가 들었다.

'소금물을 덜어내면 그만큼 소금도 없어지는 거니까 소금물의 농도가 줄어드는 게 아닌가?'

이 의문이 작은 불씨가 되어 나의 모든 사고를 지배했고,

이런 의문을 가진 채로 그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었다.

곧장 수학학원 선생님께 갔다.

'선생님, 소금물을 덜어내면 소금이 없어지는 건데 왜 농도가 그대로예요?'

'왜냐면, 그만큼 물도 줄어들기 때문이지'

'근데요, 소금이 줄잖아요. 아까 농도 공식에 대입하면 소금의 양이 분자에 있었는데 그게 줄잖아요!'

'그만큼 물이 줄기 때문이라니까? 농도 공식 다시 써봐. 어떤 거였어?'

정말 이 과정을 30분간 반복했다. 농도 공식은 눈감고도 쓸 수 있었고, 선생님이 뭘 말하는지도 알지만,

그럼에도 내 궁극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소금이 줄잖아!!'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학생이 처음이라는 듯

선생님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깊은 한숨을 푹 쉬셨다.

그제야 눈치를 채고,

그냥.. 그렇게 외워야겠다.. 이해는 포기하자..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ㅇㅇ아, 너 딸기우유 마실 때 마실 때마다 딸기 우유 맛이 연해지니?"

아하.

그 30분간의 장고한 설명이 단 3초 만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 비유 하나만으로 단순히 소금의 양이 농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농도는 '비율'의 개념이라는 것을 3초 만에 체득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약 10년이 흘러 나는 수학 과외선생님이 되었다.

근데 아마도, 내가 오랜 시간 수학 과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유' 덕분인 것 같다.

나는 수학적 사고력과 이해력이 남들보다 많이 낮다.

그래서 하나를 이해해도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게 어느 순간 나의 장점이 되었다.

"내가 이해했으면 너도 이해할 수 있어"

이게 나의 수학 과외의 모토가 되었다.

어려웠던 내용을 이해하는데 나는 비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걸 남들에게 전달했을 때 전달력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과외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내 의견을 전달할 때도

비유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가끔 내가 봐도 탁월했던 비유는 상대방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마치 인생의 진리를 모두 터득한 사람 마냥 칭찬받는 기분도

상당히 나쁘지 않다.

어쨌든,

비유는 참 괜찮은 인간의 재능 중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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