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S 교환학생 ::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멘토가 되어 있었다.
[3줄 요약]
1. 우연히 들어간 곳은 나와 '인연'이 되었다.
2. 싱가포르에서도 계속되는 '교육'의 끈.
3. 어쩌다 보니 결성된 '한중일' 어벤저스 팀.
시작은 우연이었다.
NUS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CA(Club Activity) 활동 모집 공고가 올라온다. 운이 좋게도, 내가 교환학생으로 갔던 시기가 마침 신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다 보니 CA 모집 행사 규모가 꽤나 컸다.
학술 동아리부터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정말 다양한 동아리들이 홍보 부스를 마련해서 신입 부원을 모집하고 있었고, 갖가지 신박한 방법을 동원해서 동아리를 홍보하고 있었다.
이틀 동안 한 군데도 빠짐없이 모든 동아리 부스를 돌면서, 가입하고 싶은 동아리 리스트 몇 가지를 추려봤다. [배구, 스킨스쿠버, 배드민턴, 클라이밍, 오케스트라, 밴드, 한국 문화] 이 정도로 추려서 동아리 지원서를 제출했다. 이 중 몇몇 동아리는 교환학생 신분으로서 참여에 제한이 있었다. (개인 악기를 준비해야 한다거나, 활동 기간이 최소 1년 이상이거나, 재학생 우선 신청 등) 그래서 결국 신청할 수 있었던 동아리는 [한국 문화 교류 동아리]와 [NUS 배구 동아리]였다.
한국 문화 교류 동아리는, 웬만한 한국인 교환학생들은 모두 신청해서 현지 학생들과의 교류 접점을 넓혀가는데 의의가 있는 듯했다.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Buddy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매칭된 버디와 친목을 키워나갈 수 있었고, 가끔 진행되는 outing 활동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며 왁자지껄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배구 동아리는, 내가 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하.
이미 준프로급(?)의 실력을 가진 친구들이 어마어마한 스파이크를 때리며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 준비하다가 한 달 동안 깁스하고 다닌 트라우마가 떠오르고 말았다. 동아리 부장 친구가 (감사하게도) 1:1 서브 연습도 도와주고 패스 연습도 정말 친절하게 도와줬지만, 다음 날 시퍼렇게 멍이 든 나의 팔목을 보며 결심했다. 이건 아닌 걸로.
생각보다 동아리 모집 기간은 길었다. 체감상 약 1개월간 동아리 모집을 하는 듯했고, 인기 있는 동아리는 모두 마감. 동아리 신청 사이트에 남아있는 동아리는 이름부터 생소한 동아리뿐이었다. 남는 게 시간뿐인 교환학생 신분으로서 한국 문화 동아리만 하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보니, 그냥 남아있는 동아리 중 아무거나 신청해 보기로 했다. 그중 하나 눈에 띄는 것이 'NUS Teach-SG'라는 동아리였고, 이름은 생소했지만 'Teach'라는 키워드가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과 접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그게 어느정도였느냐고 물어본다면, 동아리 OT 시작 30분 전에 신청폼 작성하고 제출하자마자 OT가 시작되었달까.
사실상 OT를 들으면서 이곳이 어떤 동아리인지 알게 되었다. NUS 내에서 생각보다 규모가 큰 '봉사활동' 동아리였고, 재학생 입장에서 이 동아리는 생각보다 메리트가 큰 듯했다. 그에 비하면 별생각 없이 들어왔지만 OT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와 결이 맞는 동아리를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어린 친구들에게 멘토링 봉사활동을 하는 동아리이다 보니, OT에서는 곧바로 멘토 기본 소양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Role Play Time'. 같이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과 한 조가 되어 멘토-멘티 롤플레이가 시작되었다.
롤플레이 진행 방식은 생각보다 신박했다. 다양한 상황이 적힌 종이를 랜덤으로 뽑은 후,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진짜 연습을 해보는 것이었다. '집중 안 하는 아이가 있을 때, 멘토링 시간에 잠만 자는 아이가 있을 때,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수업 시간을 방해하는 아이가 있을 때' 등등 상황이 주어졌고, 그 상황에 맞게 우리는 '연기'를 해야 했다. 4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조에서 매 상황마다 2명은 말 안 듣는 잼민이 역할, 나머지 2명은 그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멘토 역할.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긴 한데 그땐 약간 도파민 사악 돌면서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엔 내가 잼민이 역할을 맡아서, 멘토 역할의 친구가 어떤 질문을 해도 'why?'만을 외쳐대는 잼민봇 역할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상황에서는 한 시도 의자에 안 붙어있는 잼민이 역할. 세 번째 턴부터는 역할을 바꿔서 내가 '멘토'가 되었다. 나의 잼민력에 감탄한(?) 친구들은 나보다 더 멋진 잼민력을 보여줬다. 그 상황에서 아이들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역할에 충실하게 몰입한 나머지 막판에는 진짜 감정이 생길 뻔했다.
그렇게 무사히(?) 롤플레이가 끝나고, 멘토링 타입을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멘토링 방식과 멘토링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다양한 형태의 멘토링 수업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을 선택할 수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스포츠 게임을 즐기거나 필수 과목을 알려주는 등의 내용들로 구성되었다.
여러 가지 옵션들을 고민하고 보니,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딱 하나뿐이었다.
'오프라인 활동이면서, 주말이 아닌 평일 활동일 것, 다양한 멘토링 활동 형태를 경험할 수 있는 것'
이렇게 고민하고 나니, 나에게 남은 옵션은 'Yong-en Care Centre' 멘토링 봉사활동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센터에 가서 7-12세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습 교과 과정을 제공하는 활동이었고,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함께 롤플레이 했던 친구들하고도 그새 정이 들어서, 다 같이 Yong-en Care Centre 멘토링 봉사활동을 신청하기로 했다.
일본에서 온 Kei, 중국에서 온 Rena, 한국에서 온 나. 어쩌다 보니 이렇게 셋이 모여 한중일 어벤저스 팀이 되었고, 동아리 부장이었던 친구도 '한중일 대화합의 현장'이라며 한바탕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활동 티셔츠를 받았다!
여담이지만, 티셔츠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정말 잘 입었던 기억이 있다. 멘토링 봉사활동 갈 때에 대부분 저 티셔츠를 입고 활동을 했고, 확실히 통일된 옷이 주는 소속감의 힘이 있었다. 좋았다는 뜻 :)
Yong-en Centre에 배정된 후, 센터 매니저님과 온라인으로 간략한 OT를 진행했다. 이 센터는 어떤 곳이며, 어떤 비전과 미션을 가지고 있는지, 이곳에서 만나게 될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지, 봉사활동을 하며 유의할 점은 어떤 부분인지 등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OT를 들으면서, 어느 나라든 사회적 약자를 위해 힘쓰는 사람은 어디에나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당연하지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싱가포르에서 '외국인'으로서 살다 보니,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OT에서 느낀 '공통점'의 코드가 나에게 더 깊이 와닿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결국 '사람'이라는 키워드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느낀 이 순간이, 내가 싱가포르에 와서 처음으로 진짜 소속감을 느낀 순간이었던 것 같다.
OT의 마지막 장표였다.
Mentors help kids see into their future
(멘토는 아이들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문장의 울림이 꽤나 컸다. '내가 이곳에서 하는 행동 하나, 말 하나가 아이들의 미래와 운명을 바꿀 수도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크겠구나. 멘토라는 이 자리가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겠구나.' 누구도 나에게 멘토 역할로서 책임감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이 문장이 그러했다. 나에게 엄청난 책임감을 안겨줬고, 그 책임감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경험들을 잘 활용해서, 이 아이들에게 작은 씨앗 하나 정도를 마음속 깊이 심어줄 수 있는 멘토가 되어야겠다는 나만의 다짐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