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크게 맹신하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MBTI를 통해 사람의 경향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MBTI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1) 에너지의 방향에 따라 E(외향적) / I(내향적)
2) 인식의 기능을 나타내는 N(직관형) / S(현실주의형)
3) 판단기능을 나타내는 T(사고형) / F(감정형)
4) 생활방식을 나타내는 J(계획형) / P(탐색형)
이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은 T / F를 나타내는 '판단기능'이다.
F의 선두주자인 나는, 이 부분이 다른 사람을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고, 나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듯하다. 그렇다고 지금은 온전히 T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해의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는 매우 감정적인(F인) 사람이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그에 대한 장단점이 다소 명확하다.
장점은, 말 그대로 감정의 다채로움이다.
행복함을 쉽게 느끼고, 행복의 종류도 다양하다. 성취감에서 오는 짜릿한 행복, 우연에서 오는 예상치 못한 행복, 감동으로부터 오는 행복 등등.. 그래서인지,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추억'이 되어 잊지 못하는 순간으로 머릿속에 저장된다. 가끔 삶이 너무 힘들 때, 그런 기억들이 내가 나아가는데 힘이 될 때도 많다.
단점은 쉽다.
장점을 뒤집으면 단점이 되기 때문이다.
감정이 다채롭기 때문에 쉽게 우울해진다. 우울해지지 않아도 될 일까지 깊은 우울감에 빠질 때가 많고, 스스로에 대한 자기 연민에 빠져 감정의 골을 깊게 파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감정이 태도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거나, 내가 현재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걸 꾹 참으려고 노력하지만, 감정이 온몸을 지배하기 때문에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정도가 일정 한계치를 넘어섰을 때, 감정이 태도가 되어버릴 때가 있다. 나의 감정이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단점이 되곤 한다.
처음엔, 나의 이런 감정적인 성향을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명제였다.
성향이라는 것은 내재적으로 타고난 기질을 반영하는 것인데, 그걸 내 의지로 바꾼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감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장점도 많은데, 단지 이런 성향의 단점 때문에 내가 자꾸 이 성향을 바꾸려는 게 맞는 걸까 싶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내가 버리려고 하는 것 같아 순간 불쌍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런 고민을 일기에 끄적거리던 중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단어가 하나 있었다.
'감수성'
내가 생각한 감정적인 사람의 장점을 한 단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가장 적확한 단어였다.
감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정까지도 다채롭게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되면서,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는 감정의 뿌리를 단단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뿌리가 단단해야 감수성이라는 잔가지들이 더 멀리 뻗을 수 있으니까.
'F'라는 나무가 자라는 것을 거부하고 'T'라는 나무로 바꿔 심는 것이 아니라,
F나무가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다채로운 빛깔의 잎과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일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처방인 것 같다.
그걸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항목화되어 생각나진 않는다. 그냥, 쉽게 흘릴 수 있는 일은 쉽게 흘리고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사소한 의심의 불씨가 한순간에 나무 전체를 휩쓸고 지나갈 수 있음을 알기에 최대한 의심이 확신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잡고,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내가 지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