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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하지 않아도 괜찮아

2021.여름.신사

by 토니

하루는 그 아이가 내게 와 물었다.

“오빠, 나 고민있어.”

그 애를 봐온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아이와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책에 같은 내용이 꽤 있었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고민?”

“나, 하고 싶은게 없어.”

이게 무슨 말인가 생각할 즈음 아이가 말을 이었다.

“내 동기들은 다 나중에 하고 싶은게 있어. 다들 자기 미래에 대한 계획이 조금씩은 있더라구. 몇몇은 벌써 적극적으로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걔네를 보니까 나만 뒤쳐진거 같단 생각이 들어. 심지어 오빠도 나중에 하고 싶은게 있잖아.”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나는 자주 나의 꿈에 대해 떠들었고 주변에게 알렸지만, 그 아이는 달랐다. 항상 잘 모르겠다는 말로 얼버무렸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나는 앞에 놓인 바닐라 라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숨을 내쉬자 달콤한 향기가 목부터 코까지 이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때에 내가 살핀 아이의 표정은 꽤나 진중한 표정이었다. 덕분에 난 더 고민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까. 나는 저 고민을 어떻게 해결했었던가. 따위를 생각하며 커피잔의 얼음을 빨대로 휘저었다. 짧은 적막이 지나고 내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게… 그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어. 우선은 너랑 가장 인접해 있는 것들에서 가볍게 찾아봐. 너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던지, 너가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 혹은 너가 궁금했던 일에서 말이야.”

언뜻 들어도 뻔하디 뻔한 이 말을 들은 그 아이는 ‘내가 그걸 몰라서 너한테 고민상담하러 왔겠냐’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 그런데 그 틀을 못잡겠어. 뭐부터 시작해야하는지 감을 못잡겠단 말이야.”

그렇다. 사실 이 애가 이정도도 생각 못했을 리가 없다. 고등학생 때부터 공부도 곧잘 하고 똑부러지는 성격에 생각도 깊어서 이 아이를 의지하는 친구도 많아 ‘엄마’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였다. 아무래도 내 이야기로 더 쉽게 설명해주는게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 그럼 내 이야기를 해줄게.”

“나도 당연히 너랑 같은 고민을 많이 했었어. 지금도 다르지 않아.”

“근데 어떻게 계획이 벌써 그리 확고하고 구체적이야? 지금도 고민 중이라며.”

따지듯 달려드는 그 애를 보며 난 웃으며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음… 내가 너한테도 한번 말한적이 있을거야. 내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거라고. 그게 내 궁극적 목표라고.”

“그래 오빠 람보르기니 무리없이 탈 만큼 벌고 싶다며.”

그 애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냥 웃으라고 하는 소리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

“뭔데?”

“나는 나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돈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걸 못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예를 들어 나중에 내 사촌동생이 ‘형, 나 어떤 일을 시작해보고 싶고 자신도 있는데 돈이 없어…’ 라고 할때 내가 흔쾌히 빌려줄 수 있는 정도? 딱 그만큼 벌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

“오… 멋있는 형이네.”

이야기를 들은 그 아이가 보내는 의외라는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게 내 목표의 종착지야. 난 항상 큰 목표를 먼저 결정해놓고 거기까지 가는 길을 만드는 성격이거든. 생각했지! 내가 어떻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봤어. 의사? 피도 무서워하면서 무슨. 판검사? 누군가를 심판하는건 나랑 안맞아. 그럼 사업가? 한 조직의 경영자? 이유없는 자신감이 솟더라고. 그래서 그걸 조금더 작은 목표로 잡았어! 그게 전부였어. 이유없는 자신감. 그거로 시작한거야.”

이야기를 듣던 그 아이는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렇구나, 근데 오빠 꿈은…”

“아직 안끝났어 기다려봐.”

나는 그 애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기에 말을 끊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조심성이 좀 많은 성격이잖아? 또 생각에 잠겼어. 사업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뭐가 좋을까? 근데 그때 내가 마침 경제공부에 한참 빠져서 책도 찾아읽고 하던 때이거든. 부모님도 금융업 쪽으로 종사하시고. 번쩍 든 생각이 펀드매니저를 양성하는 회사는 어떨까였어. 후배 펀드매니저에게 교육을 해주고 내 경험을 나눠주어 성장시키고 다른 회사에 중개해주는 일. 사업 아이템까지 생각했으니 다음은 뻔하지? 내가 우선 뛰어난 펀드매니저가 되는것. 이 다음은 너도 아는 이야기야. 그때부터 경제 관련 동아리, 대회, 시험 등을 참여하고 보고, 지금은 대학 전공도 경영학으로 갔잖아. 이런 식으로 큰 목표에서 작은 목표들을 파생시켜서 하나씩 이루는게 내 방식이야. 이 그림을 그린건 15살 때였고.”

이야기를 다 들은 그 아이는 입을 살짝 벌리고 벙찐 표정을 짓구 있었다. 그 얼굴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그제야 자신의 표정을 자각한듯 아이는 민망해하며 웃었다.

“와… 그런식으로 세운 거였구나…대단하네”

진심이 담긴 말투와 살짝 슬프게 웃는 그 아이의 표정을 보니 안타까워 말했다.

“너도 충분히 할수 있는 일이야. 난 너가 나보다 충분히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걸?”

그 아이가 고맙다는 표정으로 말을 대신했다. 그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기 앞에 놓인 쌉쌀한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마시며 생각의 끈을 이어나갔다. 적막이 길어졌지만 나와 그 아이 사이에는 전혀 어색한이 없었다. 침묵에서 비롯된 어색함은 이미 몇년 전에 없어진지 오래였다. 난 그 아이가 충분히 생각할때까지 기다려줬다. 몇 분 후 아이가 천천히 나를 불렀다.


“오빠!”

“응?”

“근데 아까 내 주변에서 하고싶은 일을 찾으랬잖아. 난 그게 제일 어려워.”

아이는 자신의 긴 생각의 결과를 스스로 마무리짓지 못한 것에 실망한거처럼 보였다. 미로에 갇힌 강아지를 보는것 같았다.

“너가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그래.”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음… 세상에 있는 모든 ‘일’ 들을 네가지로 분류하고 살아. 첫번째는 ‘해야 하는 일’ 이야.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각자의 역할에 부여된 일. 예를 들어 우리는 지금 학생이잖아? 학생의 본분이 뭐지?”

“하.. 공부??”

왜 엄마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아이가 대꾸했다.

“맞아 해야하는 일은 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걸 알게 해주거나 새로운 도전을 끝없이 제공해줘. 그걸 열심히 하다보면 나중에 무얼 하든 걸림돌이 되는 걸 치울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해주지. 두번째 일은 ‘하고 싶은 일’이야. 취미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편해. 난 요리하는걸 좋아하고 넌 춤추는걸 좋아하지. 이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보단 개인의 만족을 위해 하는 거야. 자, 이제 제일 중요한 세 번째야. 넌 이걸 찾아야해. ‘잘하는 일’이야. 너가 ‘해야하는 일’과 ‘하고싶은 일’을 하다 보면 분명히 하나쯤은 ‘잘하는 일’이 있을거야. 그걸 잘 기억해서 갈고닦으면 그거에 관련된 직종으로 돈을 벌수 있게 될수도 있는 거지. 제일 베스트는 세가지 일에 다 포함되는 걸 찾는 거야. 해야 하는 일인데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심지어 너가 잘해. 그런 일을 찾고, 하고 있게 된다면 그게 이미 꿈을 이룬거 아닐까?”

내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을 마치자 그 아이가 ‘이야…’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말을 황급히 더 이어갔다.

“그러니까 넌, 지금처럼 평소엔 ‘해야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남는 시간엔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보내. 지금까지와 다른 점은 이제 그 일 사이에서 ‘잘하는 일’을 천천히 찾아보는 거야.”

고민을 처음 말할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 훨씬 가벼워진 표정으로 아이가 말했다.

“알았어, 고마워 도움이 좀 된거같아.”

나도 괜히 마음이 흐뭇해졌다

“슬슬 일어나자, 늦었다.”


카페 문을 열고 나서자, 낮에는 습기때문에 들이키기 힘들었던 공기가 한결 더 상쾌하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마치 여름이 끝나간다는걸 알려주는거 같았다.

한참 걷다 아이가 문득 생각이 난듯 물었다.

“아 오빠, 근데 마지막 일은 뭐야? 아까 오빠가 말한건 세 개 뿐인데.”

“아! 내가 깜빡했네, 네번째 일은 ‘그 외 모든 일’이야.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 정도도 아니고, 딱히 잘하지도 않지만 그냥 한 일들.”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사실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일들이야. 난 그걸 ‘경험’ 이라고 불러.”

말을 하다가 문득 이 아이가 나한테 저 고민을 말하기까지 속으로 자존감을 얼마나 긁었을까, 자기 자신과 남을 얼마나 비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쓰러웠다.

“야! 너 이제 스무살이고 대학교 이제 시작했어. 앞으로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고 나보다도 더 잘 널 안내해줄 사람들을 많이 만날거야. 그러니까 걱정마.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제야 넌 환하게 웃었고 그제야 내 마음이 놓이는 듯 했다. 너와 나의 같은 내용이 담긴 인생의 페이지가 또 한장 늘어났다는 생각에 감사하며 난 너를 들여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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