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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이라는 말의 무게

2021. 가을. 대전

by 토니


흐린 하늘 사이로 추적추적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들

시원하게 내리는 것도 아닌 것이 더운 공기를 더 끈적하게 만드는 하루

물먹은 활동화가 흙바닥에 비벼져 쓸리는 듯한 소리들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갑갑하고 좁은 전화부스 안에서 고민 끝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 뚜루루루 딸칵!

“응~ 아들! 잘 지내고 있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너무나 익숙하고 따뜻한 목소리는 반가움을 숨길 생각 없이 고스란히 나에게 내비쳤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나는 어금니에 힘을 주어야 했다.

“어… 뭐 그냥 지내고 있지..”

예외 없이 코가 막혀오기 시작했다.

“그래.. 밥은 잘 먹고 있지? 자는데 춥지는 않아?”

그 일상적인 인사가, 그 단순한 형식적일 수도 있는 질문이, 왜 그렇게 아프게 느껴졌을까. 내가 겨우 막고 있던 감정이 위험해지는 걸 느꼈다.

“움… 밥은 꽤 잘 나와, 근데 낮엔 더운데 아침저녁으로 좀 쌀쌀하긴 한 거 같아. 큼”

“... 왜 그리 코를 킁킁대, 감기 걸렸어?”

새어 나온 아주 작은 목 막힘을 어떻게 그렇게도 쉽게 알아챘을까 명치를 세게 맞은 것처럼 그 한마디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말도 하기 힘겨웠던 나는 새어 나오는 울음을 가리기 위해서 말을 아껴야 했다. 나는 엄마가 부디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며 힘겹게 앙다문 입을 열었다.

“아니야 감기.. 그냥….”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미 눈에는 웅덩이가 생겼고 눈물이 흘러넘치지 않게 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아니야 없어 헤헤.”

애써 끌어올린 입꼬리 때문에 고였던 눈물이 광대뼈를 지나 흘러내렸다

아. 이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지났음을 감지한 순간 목 아래에서부터 매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이 악물고 올린 입꼬리가 무색하게도 눈물은 광대뼈를 넘어 쏟아져 내렸다.

“그냥… 끄윽… 그냥… 끅… 좀 힘들다..”

그리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눈물보다도 더 나오는 콧물을 벅벅 닦아내며 한참을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울어냈다.

엄마는 그 한참을 고스란히 기다려주었다.


사람은 할 말이 너무 많으면 ‘그냥’이라는 말로 전부 대신해 버리곤 하는 것 같다. 이유는 항상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힘듦을 숨기고 싶어서 일수도 있고, 말해봤자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뱉은 ‘그냥’이라는 정말 짧은 말이 사실 그 사람의 꽉꽉 눌러 담긴 응어리의 일각일 것이다.

그날 내가 내뱉은 ‘그냥’또한 비슷한 맥락이었다. 가족들을, 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던 어머니에게 더 이상 부담을 지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일 때도 있지만 때때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사람이 내 말의 진의를 파악하고 다가와주는 순간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 작은 사건 하나로 인생에 새로운 인연이 연결되기도 하며, 많은 것이 바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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