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가을. 대전
‘그냥이라는 말의 무게’ 편과 이어집니다
한참을 소리 내어 흐느낀 후에야 진정되어 말을 할 수 있었다. 그제야 엄마는 내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슬프게 했어?”
어릴 때부터 내가 울곤 하면 엄마가 항상 하던 말이었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나는 눈물이 계속 흐르는 채로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듯이 말했다.
“몰라, 그냥 좀 힘들었던 거 같아. 그냥… 나도… 나도 힘든데! 아무한테도 털어놓을 곳도 없고 기분 안 좋게 있는 것도 눈치 보이고 해서 항상 웃고 있고, 그냥… 끅…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너무 힘들어.”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한 것과는 달리, 나는 정확하게 내가 힘들었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르겠다고 한 것은, 아마 수없이 많은 힘듦 속에서 대체 어떤 것이 방금의 울음에 대한 이유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에 나는 여러 가지로 상당히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바뀌는 환경에, 적응할 시간은 짧고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 벌어진 가족 일로 머리도 복잡한 터였다. 결국 그 모든 부담을 홀로 짊어지기 힘들어서 군대로의 도망을 선택했다. 그러나 몸은 도망칠 수 있었을지언정, 내가 두고 온 모든 것들이 마음의 짐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시련들 중에서 나는 도무지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엄마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어.”
“어..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울음 때문에 딸꾹질을 하듯 목소리가 떨리는 채로 내가 물었다.
“우리 아들, 항상 밝은 모습 유지하려고 하고, 엄마한테 걱정 안 시키려고 더 씩씩한 척하려고 하는 거, 엄마는 다 알고 있었거든.”
사실 나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아니,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껍데기가 수십 번도 더 바뀌었다지만, 내 안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겁쟁이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시다. 모를 리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르시기를, 아니 헷갈리시기라도 하길 바랐다. 내가 정말 완벽하게 연기한다면, ‘어? 정말 괜찮은가?’라는 생각이 드시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역시 어림도 없었고, 예상하고 있던 그 말을 엄마에게서 직접 듣게 되자 그동안 나름 노력했던 스스로에게 실망감과 허탈함이 몰려왔다.
그런데, 그다음 엄마의 한마디에 나의 생각이 정지했다.
“근데, 엄마는 네가 이렇게 울어줘서 너무 고마워”
“... 어?”
정말 ‘어?’라는 말 외엔 밖에 안 나왔다.
당신을 위해 오랜 시간 연기했고, 당신에게 더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가능하다면 당신이 짊어진 짐도 나눠 들기 위해 노력해 온 저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짐이 되는 것이 고맙다니요.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는 말을 이어나갔다.
“집안에 일도 있고 나서부터는 네가 한 번도 엄마 앞에선 안 울었잖아. 항상 의연해했고, 가족들의 기쁨이 되려고 노력했고, 더 씩씩해졌고, 이제는 엄마 안아줄 줄도 알고 말이야 그렇지?”
말을 하는 엄마는 차분한 듯 보였지만 그 사이 미세한 떨림을 나 역시 그녀의 아들이었기에 읽을 수 있었다.
“엄마는 계속 걱정이 되더라고. 너도 힘들 텐데.. 여린 우리 아들, 혼자 마음이 곪아가고 있을 텐데. 엄마는 너를 우리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리게 한 것 같아서 계속 미안했어. 엄마는 차라리 네가 애기 때처럼 안겨서 울었다면, 투정 부리면서 칭얼거렸다면 더 안심이 되었을 거 같은데 네가 그러질 않더라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내가 가장 듣기 좋아했고 가장 많이, 오래도록 들었던 목소리이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엄마도 울고 있었다.
“뭐야.. 울지 마요…”
라고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도 알았다. 엄마는 계속 이어 말했다.
“그래서 네가, 얼마나 의지하고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으면 이 어미한테도 그러지를 않을까, 그게 너무 안쓰러웠어. 그런데 그렇게 애쓰는 너한테 먼저 말을 꺼낼 수도 없더라고. 그래서 계속 기다렸어.”
마지막 말을 하며 넘어가지 않는 마른침을 삼킨 엄마가 말을 마쳤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눈은 계속 물을 쏟아내고 있었고 여전히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었는지 엄마가 아까보단 높은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사실 너 훈련소 첫 전화 때 울 줄 알았다?”
“으잉? 왜?”
한참 잠긴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훈련 힘들다고 징징거리면서 울 줄 알았는데 엄청 밝게 ‘엄마!’ 하고 오더라? 한편으론 안심이었지만 한편으론 또 엄마가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어졌지… 아무튼!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엄마한테는 울어도 괜찮아. 엄마 말고 누구한테 이럴 거야! 여자친구한테 이럴 거야? 차일걸??”
엄마가 놀리듯이 도발하자 나도 발끈해서 받아쳤다
“안 그러거든!”
“그래 그니까 엄마한텐 맘껏 그래도 괜찮아. 그러라고 엄마가 있는 거니까. 힘들 땐 이렇게 실컷 우는 게 도움이 돼. 엄마도 가끔 혼자 있을 때 울고 싶은 날엔 소리 내어 펑펑 울곤 해. 그러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거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을 울고 나니 무언가 응어리진 것이 풀어진 기분이었다. 마음이 점차 진정되고 더웠던 몸도 천천히 식어갔다. 아까는 먀냥 습하기만 했던 오늘의 차가운 가을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들, 울어줘서 고마워. 소중한 내 새끼… 엄마가 미안해.”
나는 여전히 엄마의 짐이 맞았다. 다만 내려놓고 싶은 짐이 아닌, 엄마가 직접 주워 담아 짊어지고 다니는 엄마의 소중한 짐이었다. 잃어버리면 안 될 만큼 소중한 짐.
당신을 걱정했습니다. 항상 강인하셨던 분이 그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으니까요. 수십, 수백 번 당신에게 안겨 울었던 저였지만, 그날만큼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대신 이번엔 제가 우는 당신을 안아주어야겠단 생각만이 들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 역시 그저 한 명의 연약한 사람이고 눈물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내가 당신을 지키겠다 다짐한 그날, 아버지도 그러길 바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조급하게 저를 밀어붙이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저 눈물 많고 여린 사람인 것만이 아닌 그동안 항상 저를 지켜주었던 내 어머니라는 것을. 이 글은 여전히 부끄럼 많고 표현이 서툰 제가 당신께 뒤늦게 해 보는 고백입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