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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12. 2023

발놀이 이야기 꾼

2023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3. 들목의원 

    

   들목의원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창이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곧 대문이 열리고 하인 하나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네가 두드렸니?”

   “예.”

   “무슨 일인데?”

   “아버지가 아프세요. 약을 지으려고 왔어요.”

   “들어와라.”

   하인이 창이를 의원 집안으로 들였다.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행랑채로 보이는 방 안에 병자로 보이는 이들이 누워있었다. 마당에는 약재 끓이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아이가 약을 지으러 왔다는뎁쇼?”

   그때 방문이 열리고 의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하얀 천으로 입을 가린 의원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누구 약을 지으러 왔니?”
    “아버지가 편찮으세요.”

   “아버지가 직접 오지 않고 왜 널 보냈니?”

   의원의 말에 창이는 둘러댈 말을 떠올리느라 눈알만 굴렸다.

   “그래, 아버지 증세가 어떠시냐?”
    참다못한 의원이 먼저 물었다. 방 안에는 의원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었다.

   “기침하면 피를 토하세요. 가슴이 답답해서 숨쉬기 힘들다 할 때도 있어요.”

   의원이 말없이 돌아앉아 마주 앉은 병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창이는 의원의 다음 말을 기다리느라 마당에 서 있는데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병자가 밖으로 나가자 의원이 큰 소리로 하인에게 일렀다.

   “약재 방 다섯 번째 서랍에 있는 약재를 보름 동안 먹을 양만큼 담아 드리거라.”

   “예”

   하인이 서둘러 병자를 데리고 약방으로 향했다.

   “약을 살 돈은 있니?”

   의원이 창이를 요리조리 뜯어보며 물었다. 창이가 보퉁이에 있는 약재와 고사리를 꺼내 보였다.

   “제가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 캔 약초들이에요. 고사리도 있고요. 돈은 아니지만 혹 필요하시면 더 캐서 드릴 수도 있어요.”

   “쯔쯔”

   의원이 끌끌 혀를 차며 창이를 보며 말했다

   “가서 네 아버지를 모시고 와. 너한테 내 줄 약은 없다.”

   의원이 방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창이의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아버지는 못 오세요. 제발 저한테 약을 주세요. 네?”
    창이가 울먹이며 굳게 닫힌 문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서 이러면 안 돼.”

   하인이 보퉁이에 약재와 고사리를 담아 묶은 다음 창이를 대문 밖으로 쫓아냈다. 쫓겨난 창이는 대문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돈 나고 사람 났나요? 너무 해요.”

   창이가 소란스럽게 대문을 두드렸지만 굳게 닫힌 대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창이는 대문 앞에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때 창이 앞에 나타난 소연이 안타까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만해.”

   “너도 내가 이러는 게 재밌지?”

   창이는 눈알을 굴리며 소연을 노려보았다.

   “그런 게 어딨어?”

   소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앙다물었다.

   “날 따라와.”

   소연이 창이의 보퉁이를 들었다.

   “어딜?”
    “따라와 보면 알아.”

   창이는 한참을 울어서인지 기운 없이 일어섰다. 소연을 따라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아까부터 창이를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는 사내아이들이 있었다. 괜히 잘못 걸렸다가는 장산에서처럼 놀림을 받거나 두드려맞을 수도 있었다.

   “어디 가는데?”

   “우리 집에.”

   “내가 왜 너희 집에 가?”

   “어머니가 의원은 아니지만, 병자를 좀 볼 줄 알아.”

   소연이 사는 집은 초가를 얹은 아담한 집이었다. 그곳에서 소연이 어머니와 둘이서 산다고 했다.

   “이 아이는 누구니?”

   부엌일을 하던 어머니가 물끄러미 창이를 보았다.

   “남사당 아이예요.”

   “그러니? 그런데 이 마을에는 왜?”

   “아버지 약을 구하러 의원에 갔는데 쫓겨났대요.”

   “뭐? 쫓겨났다고? 그럴 분이 아닌데 왜 그러셨을까?”
    소연의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창이를 보았다.

   “돈만 밝히는 악덕 의원이에요.”

   창이가 퉁명스럽게 쏘았다.

   “아버지는 어떻게 아프시니?”
    “아버지는 남사당패에서 알아주는 발탈 재주꾼이에요. 그런데 최근에 피를 쏟으시고 숨쉬기 힘들다고 하세요.”

   창이가 고개를 숙였다. 

   “그랬구나.”

   소연이 어머니가 주먹밥을 창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네가 고생이구나.”

   “아버지 병을 낫게 할 약이 있을까요?”
    창이가 간절한 낯빛으로 물었다.

   “글쎄다.”

   소연 어머니가 안쓰러운 얼굴로 창이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가서 주머니 두 개를 가져와 창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 약재를 달여 드려라, 조금은 숨쉬기가 편할 거야. 그리고 네 아버지를 꼭 의원에 모시고 가렴.”

   “감사합니다.”

   창이는 소연이 어머니가 고마워서 한사코 싫다는데도 가져온 약초와 고사리를 소연의 집에 두고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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