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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12. 2023

발 놀이 이야기 꾼

2023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4. 책 읽어주는 아이

    

   소연이 창이를 배웅했다. 아직 초행길이라 길이라도 잃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이유가 뭐야?”

   창이는 소연이 이토록 자신에게 다정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널 처음 본 순간 작년에 죽은 동생이 생각났어.”

   “동생이 죽었다고?”
    “그래. 연못에 빠져서.”

   소연이 낯빛이 어두웠다. 

   “그때 동생이 길을 잃지만 않았어도 연못으로 가지 않았을 거야.”

   “그랬구나.”

   창이가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가 그러셨어. 아버지를 의원에 직접 모시고 가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모시고 가고 싶지만 가려고 하시지 않을 거야. 남사당 사정이 좋지 않거든.”

   창이 말에 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 후에 들목에서 놀이판을 벌이기로 했어. 그러면 사정이 좀 나아질 거야. 그때 아버지를 꼭 의원에 모시고 갈 거야.”

   창이가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그런데 넌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는구나.”

   창이가 궁금한 듯 물었다.

   “나는 책비야.”

   “책비?”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지.”

   “너 정말 대단하다.”

   글을 모르는 창이는 책 읽어주는 소연이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요즘은 나 말고도 책 읽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책을 이야기꾼처럼 재미나게 읽어주는 사람이 인기가 있어. 나는 아무리 재미있게 읽으려고 해도 잘 안돼서 걱정이야.”

   소연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맞다. 아까 대나무 숲에서 났던 소리?”

   “맞아. 책 읽기 연습하고 있었어.”

   소연이 멋쩍게 웃었다.

   “이야기꾼처럼 즐겁게 말하는 건 나도 자신 있는데.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웠거든.”

   “정말이야?”

   소연이 부러운 듯 웃었다.

   “한번 해 봐. 내가 봐줄게.”

   창이가 소연을 손을 잡아끌고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빽빽하게 솟아 있는 대나무 숲에는 소연과 창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끄러운데?”

   소연이 얼굴을 붉혔다.

   “너도 잘하고 싶다며. 그러니 한 번 해봐.”

   창이가 눈을 반짝이며 재촉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소연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큰 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련님 이제 가시면 언제 오시나요?”

   “그게 아니지. 아무 느낌이 없잖아.”

   창이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잘 봐. 사랑하는 임이 떠나면 슬픈 거야.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해야 해. 도련님 이제 가시면 언제 오시나요?”

   창이가 슬픈 여자 목소리로 구슬프게 말하다가 훌쩍이기까지 했다.

   “너 정말 잘한다.”

   소연이 짝짝 박수 소리를 냈다.

   “아버지가 하는 발탈 극에 이런 대목이 많이 나오거든.”

   창이가 웃었다.

   “예끼 이놈!”

   소연이 대감 목소리를 흉내 내자, 이번에도 창이는 그냥 넘기지 않았다.

   “대감들은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서 배가 빵빵하단 말이야. 그러니 배에 크게 힘을 주고 배에서 소리를 내야 해.”

   “이놈! 길게 빼는 거 잊지 말고.”

   소연은 창이가 가르쳐 준 대로 곧잘 따라 했지만, 창이는 칭찬보다는 조목조목 따져서 고칠 부분을 알려주었다. 소연도 창이 덕에 자신감을 얻어서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요즘 내 자리를 차지하려는 책비들이 많아서 고민이 깊었는데 너 때문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 이거 받아.”

   소연이 엽전을 꺼내어 창이 손에 쥐여 주었다.

   “이게 뭐야?”

   “가르쳐준 값이야.”

   창이는 받아도 되나 망설였다.

   “어······.”

   “너는 이야기꾼으로는 최고야. 네 아버지를 따라 멋진 발탈 재주꾼이 될 것 같아.”

   소연이 웃었다.

   “너도 잘했어.”

   후로도 창이와 소연은 대나무 숲에서 자주 만났다. 창이는 소연이 이야기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귀를 세우고 들었다. 사람들이 왜 돈을 주고 책비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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