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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12. 2023

발 놀이 이야기 꾼

2023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5. 남사당이 싫어


   

   “낮에 어딜 그렇게 쏘다니냐? 남사당 허드렛일도 좀 거들고 해야지.”

   그날 밤 풀죽을 먹고 한참 동안 기침에 힘들어하던 아버지가 나무랐다.

   “제가 할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그런데 발탈 극 준비는요?”
    “하고 있다. 콜록콜록.”

   설두장이 발에 걸 탈을 만들고 있었다. 노랑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여자 인형과 도령 옷을 입은 남자 인형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이고 설두장은 둘의 사랑 이야기로 꾸며볼 작정이었다.

   “아버지, 의원한테 가서 보여 봐요. 네?”

   소연이 어머니가 준 약재로 숨쉬기가 편해졌다며 좋아하던 설두장이었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기침을 했다.

   “의원한테 가면 돈이 얼마나 들게. 콜록콜록.”

   설두장이 배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낮에 광주리에 담아놓은 쑥을 한 움큼 쥐고서 가래를 탁 뱉었다. 손에 움켜쥔 쑥 사이로 핏물이 배어났다. 설두장이 다른 손으로 쑥을 움켜쥐고 입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저는 약초 캐러 갈게요.”

   창이는 천막을 걷고 밖으로 나왔다. 설두장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고통스러웠다. 

   천막 바깥에는 놀이판 준비로 한창이었다. 외줄을 단단히 묶고 있던 상두 아저씨가 창이를 불렀다.

   “아버지는 좀 어떠시냐?”
    그렇게 감췄는데도 이미 남사당패에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놀이판에 낄 수나 있을는지 원.”

   상두 아저씨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장산에서처럼 들목 마을 사람들에게도 실망을 안긴다면 다음 놀이판을 흥정할 때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은 언덕을 넘는 바람만큼이나 빨랐다.

   창이는 남사당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가 점점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설두장과 함께 남사당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그리고 설두장의 발탈 극에 대한 고집은 아무도 막지 못했다. 남사당패는 저마다 자신이 가진 재주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창이는 산나물을 캐러 가는 척하면서 들목으로 향했다. 대나무 숲에서 소연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희망이라고 없는 창이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대나무 숲에 소연이 없었다. 뾰족한 죽순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창이는 죽순을 뽑아 들었다. 하룻저녁 좋은 끼니가 될 터였다.

   ‘딱.’ 

그때 돌 하나가 창이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죽순 도둑아!”

   창이 또래의 사내아이 셋이 대나무 사이로 나타났다. 하나는 창이 머리통보다 키가  컸고 둘은 창이보다 작았다. 지난번 들목의원 앞에서 창이를 차갑게 보던 아이들이었다.

   “누구 허락받고 죽순 캐는 거냐?”

   “죽순 캐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냐?”

   창이가 눈동자에 힘을 주고 노려보았다. 약하게 보이면 더 괴롭힘을 당할 게 뻔하다. 남사당패로 마을을 돌며 경험한 일이었다. 최대한 강하고 거칠게 몰아붙여야 아이들이 겁을 먹고 더는 괴롭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손톱도 깎지 않았다. 얼굴을 할퀴기에 손톱만큼 강한 것도 없었다.

   “이 대나무는 우리 마을 어른들이 공동으로 심은 거야. 너 따위 떠돌이가 가져가겠다고? 어림도 없지.”

   “쳇, 돌려주면 될 거 아니야?”
    창이가 뽑은 죽순 두 개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는 빠져나가려고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창이를 보낼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순순히 보내 줄 수 없지. 저 죽순 값은 내고 가야지.”

대장 아이가 비열하게 웃었다.

   “나 돈 없어. 비켜.”

   창이도 지지 않고 큰소리쳤다.

   “소연이가 너 같은 천한 놈한테 잘해주는 게 영 못마땅해서 말이야.”

   대장 아이가 주먹을 날렸다. 창이는 코를 정통으로 맞은 탓에 입안에서 피 맛이 났다. 코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렀다.

   “아씨, 피잖아.”

   순간 창이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천하다 소리를 듣고 자랐다. 맞기도 많이 맞아서 이제는 이골이 났다. 처음 맞을 때는 겁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기가 생겼다. 

   창이가 얼굴에 잔뜩 독기를 품고 몸을 날렸다. 대장 아이를 쓰러뜨리면 부하 아이들은 자동으로 힘이 빠진다. 창이가 대장 아이를 넘어뜨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절대 지지 않아.”

   창이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이 자식이 미쳤나?”

   바닥에 깔린 대장 아이의 얼굴이 고통을 일그러졌다. 그때 뒤에 있던 아이 둘이 창이를 떼어내려 어깨를 잡았다. 창이는 힘차게 뿌리치고 소리를 질렀다.

   “좋아. 너희도 같이 지옥으로 데려가 줄게.”

   창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버지가 아프다는 이유로 언제부터인가 남사당패 사람들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버린 이후부터 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설두장의 발탈 재주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우고 시켜 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는 짐짝 취급하는 게 참을 수 없이 원망스러웠다.

   “너희들 뭐 하는 짓이냐?”
    그때 지게를 멘 어른 둘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러고는 창이를 떼어 내고 바닥에 쓰러져 피범벅이 된 대장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성구야. 괜찮냐?”

   창이는 그제야 대장 아이 이름이 성구라는 걸 알았다. 성구를 일으켜 세운 남자가 성구의 아버지라는 것도. 

   “못돼 먹은 놈 같으니 널 가만두지 않겠다.”

   성구 아버지는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다. 그러고는 곧장 창이를 남사당패가 있는 천막으로 끌고 갔다. 그 뒤를 성구와 아이들이 뒤따랐다.

   창이의 일로 남사당이 발칵 뒤집혔다. 곧 놀이판을 벌일 마을이었다. 괜스레 소동을 일으켰다가는 그나마 받은 일감을 뺏길 수도 있었다. 남사당 놀이판을 벌여줄 남사당패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애들 일이니 한 번만 노여움을 푸시고···.”

   꼭두쇠가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굽신거렸다. 그 모습을 설두장과 곰뱅이쇠가 안절부절못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저 애가 먼저 때렸다고요.” 

   창이는 억울했다.

   “네가 먼저 죽순 훔쳤잖아.”

   성구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산에 나는 대나무잖아. 네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거 거짓말이지?”

   창이는 숲 풀과 뒤엉킨 대나무 숲이 임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분명 성구가 지어낸 게 틀림없었다.

   성구는 더는 말이 없었다.

   “이 자식이 아직도 제 잘못을 모르고.”
    성구 아버지가 창이의 머리통에 꿀밤을 먹였다. 창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때려요?”

   “이런 천한 자식이 어딜 노려봐?”

   성구 아버지가 다시 주먹을 들려던 찰라 설두장이 막아섰다.

   “내 아들은 내가 가르치지요.”

   설두장이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왔다.

   “창이는 바지를 걷어라.”
    설두장의 눈동자가 찬 서릿발 같았다.

   “아버지!”

   창이는 조심스럽게 바지를 걷어 올렸다. 설두장의 무서운 매질이 시작되었다. 창이 장단지에 빨간 줄이 여럿 그어졌다.

   창이는 눈물을 머금고 입술을 깨물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매를 맞았다. 이것이 다 힘없는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아버지가 한없이 밉고 싫었다.

   “이 사람 그만하게. 이러다 애 잡겠네.”

   보다 못한 곰뱅이쇠가 설두장에게서 나뭇가지를 빼앗았다. 창이가 그 자리에 쓰러져 털썩 주저앉았다.

   “나 참 더러워서.”

   성구 아버지가 성구 팔을 우악스럽게 쥐고 천막을 떠났다. 남사당패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곰뱅이쇠가 창이를 업어 천막으로 옮겼다. 상처에 약을 바르고 천으로 묶었다. 설두장은 돌아앉아 미동도 없었다.

   그날 밤, 창이는 밤새도록 앓았다. 설두장이 물수건으로 창이의 얼굴을 닦아 주었지만, 분노로 오른 열은 쉽사리 떨어질 줄 몰랐다. 사흘 밤낮 동안 앓고 난 후에야 창이는 간신히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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