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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12. 2023

발 놀이 이야기 꾼

2023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7. 발탈 극

    

   해가 질 무렵 사람들이 공터로 모였다. 이제 아버지의 발탈 극 차례였다. 시끌벅적하던 마을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공터 맨 앞자리에 소연과 소연의 어머니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이가 소연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소연이 미소로 답했다.

   그런데 창이는 마음이 불편했다. 사각 포장을 준비하던 설두장이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모습을 본 것이다. 설두장은 땀을 많이 흘렸다. 곰뱅이쇠도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포장이 만들어지고 설두장이 포장 구멍에 다리만 내고 반듯하게 누웠다. 곰뱅이쇠가 설두장의 발바닥에 인형 탈을 씌워 주었다. 바닥에 누운 설두장이 노끈을 잡고 이리저리 당겨 보고 목도 풀었다.

   포장 밖에는 곰뱅이쇠가 북과 꽹과리를 들고 설두장의 연희에 추임새를 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포장을 에워싸고 휘장을 쳤는데 준비하는 과정을 미리 보면 놀이의 재미가 떨어지기에 일부러 그렇게 했다.

   “자네 준비되었는가?”
    곰뱅이쇠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휘장 밖이 시끄러운 것을 보면 사람이 꽤 모인 듯했다. 창이는 살짝 휘장을 걷고 밖을 엿보았다. 그러다 공터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까지 많은 마을을 돌며 남사당놀이를 했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것도 처음이었다. 들목이 큰 마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끙,”

   포장 안에서 신음이 들렸다. 

   창이는 서둘러 휘장을 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이제 시작해야 해요.”

   그러데 곰뱅이쇠가 사색이 되어 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외줄을 타는 상두 아저씨가 뒤따랐다. 상두 아저씨가 설두장을 업었다. 설두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상두 아저씨의 등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꼭두쇠가 휘장을 열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설두장은 발탈 극을 할 수 없을 것 같네.”
    곰뱅이쇠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창이가 아버지를 불렀다.

   “창이야.”

   설두장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자네는 어서 의원한테 가게.”

   “네.”

   설두장을 업은 상두 아저씨가 뒤로 빠져나갔다.

   “자네만 믿고 벌인 일인데 이제 어찌할 텐가. 밖에 저 사람들은 어쩌냐는 말일세. 이대로 발탈을 끝내지 못하면 받은 돈을 돌려줘야 할 수도 있어.”
    꼭두쇠의 짜증 섞인 말투였다.

   “나도 일이 이리될 줄은 몰랐네. 설두장이 하도 사정하기에”

   “이게 모른다고 해서 될 일인가?”

   꼭두쇠가 버럭 화를 냈다.

   “제가 해 볼게요.”

   창이가 앞으로 나섰다.

   “무슨 소리냐?”

   꼭두쇠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 옆에서 발탈 극을 도운 게 십 년이에요. 어깨너머로 배울 만큼 배웠어요. 이제는 아버지만큼 키도 컸고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시켜 주세요.”

   창이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곰뱅이쇠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창이를 보았다.

   “시간 없어요. 밖에 사람들이 기다려요.”

   “정말 할 수 있겠니?”
    곰뱅이쇠가 창이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네.”
    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이냐?”

   꼭두쇠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욕심 많은 양반 이야기요.” 

   때마침 설두장이 만들어둔 양반 탈과 도깨비 탈이 있어 창이는 그 탈을 쓰기로 했다. 
    창이는 소연이 읽어주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렸다. 그중에서 양반이 죄를 짓고 도깨비에게 방망이질을 당하는 장면은 다시 생각해도 통쾌했다.

   “좋다. 네가 잘 해내면 너한테 큰 상을 내리겠다.”

   꼭두쇠가 창이의 어깨를 매만졌다. 창이는 포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누웠던 

베개가 창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장 구멍 밖으로 발을 내밀자 곰뱅이쇠가 탈을 씌워 주었다

.

   “창이야 준비되었니?”

   “네, 저만 믿고 휘장을 걷어주세요.”

   창이 목소리가 포장 안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곧 휘장이 걷혔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먼저 곰뱅이쇠가 장구를 치며 시작을 알렸다.

   “이보시오 사람들! 이야기 한마디 들을 준비 되었소?”

   그러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리더니 곧 잠잠해졌다.

   “이야기 들어간다. 얼씨구 쿵덕, 덩기덕 쿵덕”

   곰뱅이쇠가 장고를 퉁퉁 퉁기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자 장구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던 양반 탈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 내 이야기 좀 들어보시요.”

   창이는 억울해서 꺼이꺼이 우는 양반 목소리를 보기 좋게 흉내 냈다.

   “갈 곳 없는 사람 데려다가 땅 주고, 밤낮없이 일 시키고, 배곯지 않게 거두었거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방망이로 엉덩짝을 짝 때린단 말이오?”

   양반 탈이 옆에서 흐느낄 동안 도깨비 탈이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양반 탈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창이는 포장 안에서 팔과 연결된 노끈을 당겨 팔의 움직임을 만드느라 진땀을 뺐다. 거기에다 이제는 묵직한 도깨비 목소리를 흉내 내야 할 차례였다. 

   “이놈아! 밤낮으로 일 시키고 물바가지로 배 채우라고 하는 놈이 잘못이 아니고 뭐냐? 매운맛을 보아라.”

   도깨비 탈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양반 탈 얼굴을 짝 내려치자 곰뱅이쇠가 장구를 두두두 두드렸다.

   “아이고 양반 죽네.”

   양반 탈의 울부짖는 소리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양반 탈이 걸음아, 살려라. 도망가는 흉내도 좋았고, 양반을 쫓아 종종걸음을 치는 도깨비 흉내도 창이는 멋지게 해냈다. 창이의 첫 발탈 극은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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