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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12. 2023

발 놀이 이야기꾼

2023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8. 남사당 예인

  

   창이의 첫 발탈 극이 끝나자 풍물패들이 꽹과리를 치며 아쉬운 마지막을 알리는 놀이판을 벌였다. 마을 사람들도 다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여흥을 즐겼다. 들목이 하나가 되어 화합하는 모습에 마을 원로들은 남사당에게 음식을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성공적인 남사당놀이에 꼭두쇠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했다. 놀이가 끝나고 창이는 들목의원으로 향했다. 어느새 소연이 창이 옆에서 같이 걸었다.

   “너 정말 멋졌어.”

   소연이 창이를 보며 방긋 웃었다.

   “떨려서 혼났어.”

   “전혀 떠는 것 같지 않던데?”

   들목의원에 도착하자 평소 같으면 굳게 닫혀있을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창이는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약재를 가지고 마당을 나오던 하인이 창이를 알아보고 알은체를 했다.

   “너 발탈 극 잘하더라.”

   하인이 씩 웃었다. 어느새 창이는 인기 발탈 꾼이 된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요?”

   “저 방에 누워계셔.”
    창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버지는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창이가 옆에 앉아 아버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아버지, 이제 제가 아버지 대신 발탈을 쓸게요. 내 옆에서 지켜봐 주세요. 아무 데도 가지 말고요.”

   창이의 양 볼에 눈물이 또르르 굴렀다. 소연이 창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으흠.”
    그때 밖에서 의원이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괜찮다. 크게 손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대신 오랫동안 내 보살핌을 받아야겠지만.”

   “참말이요?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제 돈을 벌어요. 아버지 치료비는 꼭 드릴게요.”

   창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의원을 빤히 보았다.

   “허 참, 고 녀석, 나를 돈만 아는 나쁜 의원 취급이구나. 병자를 직접 봐야 약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의원이 다른 병자를 돌보러 들어갔다. 창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아버지는 의원에 남겨두고 천막으로 돌아온 창이는 색시 탈과 도령 탈을 좀 더 그럴듯하게 꾸미려 골똘히 생각했다. 또 이번 발탈 극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정리해서 다음 발탈 극에서는 더 보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천막 바깥에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곧장 창이의 천막 휘장이 걷히면서 곰뱅이쇠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곰뱅이 텄다!”

   창이가 고개를 들자 곰뱅이쇠가 환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봉당이다. 네 발탈 극이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서 놀이판을 열겠다는 마을이 늘었구나. 다 네 덕이다.”

   “정말이요?”

   “꼭두쇠가 네 몫은 단단히 챙겨주겠다고 하더라. 아마도 너를 다른 남사당패에 뺏길까 봐 겁먹은 게지. 네 아버지 병 고치는 값도 꼭두쇠가 내주기로 했다. 너는 발탈 극에만 열중하면 돼.”

   곰뱅이쇠가 창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창이는 남사당패를 빠져나와 들목으로 향했다. 소연을 만나,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대나무 숲에서 소연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올 줄 알았어.”

   소연이 책을 읽다 말고 창이를 반갑게 맞았다.

   “내가 올 줄 알았다고?”

   “그래. 소문에 네 발탈 놀이를 보겠다는 마을이 줄을 섰다면서? 자랑하러 오겠다 싶었지.”

   창이는 책을 읽는 소연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재주가 있나 생각했다.

   “정말 잘된 일이야. 나도 네 덕에 책을 재미나게 읽는다는 칭찬 들었어.”

   소연이 새로운 소설책을 가져왔다며 읽기 시작했다. 창이는 이야기에 푹 빠져서 들었다. 소연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쏘아놓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다. 

   소연과 헤어진 창이가 실실 웃으며 남사당 천막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였다. 참나무 그늘에서 장구 줄을 손보던 곰뱅이쇠가 창이를 불렀다.

   “뭐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 거냐? 네가 웃으니까 좋구나.”

   창이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창이야. 저기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좀 보렴. 흩어져서 떠 있으니 보잘것없어 보이지? 하지만 땅이 마르고 갈라질 때 저 구름이 모여서 비를 내리지 않더냐? 우리 남사당도 마찬가지란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하나로 뭉쳐서 놀이판을 벌이면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 큰 힘을 가진단다. 지난번 네가 매 맞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 네가 남사당을 떠나면 어쩌나 걱정했지. 나는 네가 남사당에 남아서 네 재주를 맘껏 펼쳤으면 좋겠구나. 남사당을 사랑하는 예인의 한 사람으로 부탁하는 거란다.”

   곰뱅이쇠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창이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그렇게 할게요.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창이는 한때 너무 억울해서 남사당을 떠날 마음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발탈 극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서러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남사당놀이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남사당패가 어떤 마음으로 놀이를 준비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창이는 부쩍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천천히 남사당 천막 안으로 사라졌다. 창이는 누가 뭐래도 남사당 으뜸 이야기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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