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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11. 2023

발놀이 이야기꾼

2023 아르코 문학 창작기금 선정작 2. 대나무 숲 계집아이


   창이는 들목 당산나무 앞에서 길게 숨을 뱉었다. 보퉁이에 넣어둔 약재와 고사리 냄새가 코끝에 와 닿았다. 의원이 약재와 고사리가 마음에 차지 않아 아버지 약을 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지만, 돈이 없으니 부딪쳐 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창이는 어깨에 진 보퉁이 끈을 단단히 쥐고 언덕을 내려갔다. 들목 초입에 빽빽하게 서 있는 대나무들 사이로 작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창이는 대나무 서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성큼성큼 마을로 내려갔다. 대나무 숲에는 간간이 새소리만 들렸다. 

   “이놈아~ 이리 썩 오너라.”

   그때 대나무 숲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화들짝 놀란 창이 얼음처럼 굳었다.

   “이놈아. 썩 이리 오지 못할까?”

   “왜요?”

   창이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아서 두리번거리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숲에서 들리던 소리가 뚝 멈췄다. 창이는 대나무 숲 안을 뚫어지게 살폈다. 그때 다홍치마 자락이 대나무 숲 사이로 휙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순간 긴장한 탓에, 빵빵하게 부풀었던 창이의 가슴이 바람 빠지듯 훅 빠졌다.

   “뭐야? 계집애잖아.”

   창이는 가던 길을 가려고 돌아섰다. 그런데 여자아이가 한발 앞서 길을 막았다.

   “비켜!”

   창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넌 누구니?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여자아이가 책을 품에 안고 창이를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들목 의원한테 가는 길이야. 비켜!”

   “너 삼봉산 남사당에서 왔지? 곧 놀이판이 열릴 거라고 하더니.”

   창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장산에서 창이는 남사당패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남사당 안에서는 예인이라 서로 추켜세우지만 남사당 밖을 나가면 다들 천하다고 손가락질했다. 아이들은 바깥 구경이 하고 싶어도 놀림을 받을까 두려워 남사당 천막 안에서만 놀았다. 그래서 들목 의원한테도 조용히 다녀가려고 했는데···.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창이는 빠른 걸음으로 여자아이를 밀치고 나갔다. 

   “난 소연이야. 네 이름은 뭐니?”

   소연이 창이의 뒤를 따라왔다. 창이는 처음 보는 계집아이가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에 놀랐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다.

   “창이”

   마을로 접어들자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물 항아리를 이고 가는 아낙,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가는 남자들, 그리고 시장을 향해 소달구지를 끄는 상인도 있었다. 창이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들목의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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