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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Jul 24. 2023

발놀이 이야기 꾼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중편동화)


   1. 곰뱅이 텄다!


   곰뱅이쇠가 허겁지겁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남사당놀이를 허락받기 위해 들목을 찾았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삼봉산 마루에서 쉬던 남사당패가 곰뱅이쇠의 목소리가 터지기를 기다렸다.

   남사당패 식구들의 간절한 마음을 곰뱅이쇠도 알고 있을 터였다. 헉헉대며 숨을 고르던 곰뱅이쇠가 빙긋이 웃다가 목청껏 소리쳤다.

   “곰뱅이 텄다.”

   놀이판을 벌일 수 있다는 반가운 소리였다.

   “와!”

   얼싸안고 부르짖는 소리가 산을 울리고 풍물패들이 꽹과리를 치며 빙글빙글 돌았다. 들목에 놀이판을 벌이고 기예를 맘껏 펼칠 수 있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보여줘야 해. 또 재미없단 소리 들었다가는 우리 놀이는 끝이야.”

   남사당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눈썹을 추켜세우고 으름장을 놓았다. 흥겹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히 식었다. 몇몇이 창이와 설두장을 못마땅한 듯 쏘아보았다.

   창이의 등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장산 남사당놀이는 설두장이 망쳐 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풍물패의 길놀이도 흥겨웠고, 마당에서 펼쳐진 외줄 타기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으며, 탈놀이, 무동, 버나 놀음, 버꾸놀이에 여럿이 흥에 겨워 춤도 추고 즐거워했다.

   몇 년 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발탈 극이었다. 그러나 설두장의 실수 때문에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발탈 극은 어른 키 높이의 네모난 포장 막 안에 사람이 누워서 발바닥에 탈을 씌우고 즐거운 이야기와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놀이다. 발탈 꾼 아버지의 입담이 얼마나 좋은지 바깥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날 창이 아버지 설두장의 얼굴은 땀에 젖어 있었다. 탈 극을 펼치다가 시름시름 앓기까지 했다. 창이가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가며 간신히 발탈 극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맥 빠진 탈극 이었다. 사람들은 괜히 시간만 버렸다며 투덜대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설두장은 이후 기력도 떨어졌다. 꼭두쇠는 그런 설두장을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봤다.

   “쳇, 재미있다고 놀이마다 판을 벌일 때는 언제고.”

   창이는 꼭두쇠 하는 양이 밉고 싫었다.

   “그러지 마. 꼭두쇠 어른 밑에는 챙겨야 할 남사당 식구들이 많아.”

   “우리는 남사당 식구 아닌가요, 뭐.”

   창이가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남사당 놀이판을 벌이겠다는 마을이 점점 줄어서 큰일이다.”

남사당 천막 안에는 끼리끼리 모여서 들목에서 펼칠 놀이 계획을 짜느라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그때 설두장과 창이가 기거하는 천막 안으로 곰뱅이쇠가 들어왔다.

   “그날은 무슨 일인가? 그렇게 활기가 넘치던 사람이?”
    곰뱅이쇠가 장산의 일을 묻는 거였다.

   “아버지 아파요.”

   창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녀석아!”
    아버지가 흠칫, 놀라서 창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정말인가?”

   곰뱅이쇠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피도 토하고 가끔 숨쉬기가 힘들어. 하지만 할 수 있어. 아니 꼭 해야 하겠지. 어디 갈 곳도 없고.”

   설두장이 고개를 숙였다. 낡아서 너덜너덜한 버선 발목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이를 어쩌는가? 약이라도 써야지.”

   “우리 처지에 무슨 약을 쓰나.”

   설두장이 고개를 내 저었다. 남사당패 사정은 다 같았다. 놀이판을 벌이겠다는 마을이 줄면서 나누는 돈도 몇 푼 되지 않아서 아파도 의원을 찾지 못했다.

   “들목 놀이판은 보름 후네. 그때 할 수 있겠나?”

   “어제 창이와 산에 가서 약초를 구해 둔 게 있네. 달여 먹으면 도움이 될 걸세. 너무 걱정 말게.”

   설두장이 힘없이 웃었다. 하지만 설두장은 약초를 달여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번번이 기침 속에 피가 섞여 나왔다. 

   창이는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의원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놀이판을 벌이기로 한 들목이 가장 가까웠다. 

   남사당패는 놀이판을 찾아다니며 떠돌았다. 한겨울에 흩어졌다가 봄이면 다시 모여서 놀이판을 벌였다. 마음 좋은 절 스님이라도 만나면 절에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여의찮으면 나무 기둥을 세워 천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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