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일부다. 학창 시절 입속에 줄줄 외웠던 시인의 시 때문에 몰랐던 것들의 이름들을 찾아보고 부르려 애를 썼다.
시궁창에 핀 꽃도 이름을 불러 주니 보살핌을 받는 정원의 꽃보다 더 예뻐 보인다. 참소리쟁이, 참나리 같은 풀들이 내가 아는 예쁜 이름들이다. 동네 개울을 지날 때면 혹시 내가 아는 이름의 풀포기가 없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내 눈에 들어야만 불러 줄 수 있는 이름들이다.
이름을 부르고 또한 불리는 일은 따스한 봄기운을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훈훈하지만, 때로는 잊지 못할 추억을 부르기도 한다.
대학교 때 내 별명은 ‘야마꼬’였다. 짓궂은 선배가 툭 건드리며
“야! 야마꼬 어디가?”
하더니 과 전체로 퍼져 나갔다. 과 선배는 물론 친구도 나를 부를 때 내 이름보다 ‘야마꼬’ 라는 별명을 더 자주 불렀다. 용무가 없어도 재미 삼아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싫은 척 내색하기도 했지만, 내심 싫지 않았다. 내가 좀 작고 귀엽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서 내 외모에 딱 맞는 별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매점에서 간식을 먹다가 별명을 지어 불렀던 선배를 만났다. 내 간식을 슬쩍 훔쳐 먹던 선배에게 어쩌다 그 별명을 지어 부르게 되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선배는
“아 그거? 야마꼬 를 거꾸로 하면 뭐가 되냐?”
그새 선배는 줄행랑을 놓고 사라졌다. ‘야마꼬’를 거꾸로 하면 ‘꼬마야’가 된다. 순간 내 별명에 대한 자부심이 싹 사라졌다. 나는 왜 내 별명을 거꾸로 말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가 체구가 작다는 이유로 ‘야마꼬’라고 불렀다니 그 선배의 뒤통수라도 한 대 올려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뿐, 대학 졸업 때까지 나는 ‘야마꼬’로 살아야 했다. 미운 이름도 자주 불러 주면 꽃이 될 수 있을까?
그 후 짓궂게 나를 놀려 먹던 선배가 입대를 앞두고 찾아와서
“야마꼬 잘 있어.” 하고 떠났다. 처음에는 선배가 미웠지만 떠나고 나니 그것도 관심이었네 싶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들의 즐거운 일화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은 축구를 좋아했다. 어느 햇살 좋은 토요일에 축구를 하다가 어찌 잘못하여 무릎에 시퍼런 멍 자국을 남겨 왔다. 약국에서 연고를 사다가 다친 무릎에 발라주었다. 아들은 그날의 일을 일기로 쓰고 싶다고 했다. 감기나 몸살처럼 정확한 병명을 알려달라는데 떠 오르는 게 없어
“축구 하다 다쳤다고 써.”라고 얼버무렸다.
아들이 나가고 책상 위에 펴놓은 일기장을 몰래 넘겨보았다.
‘오늘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서 관절염에 걸렸다. 엄마가 관절염 약을 발라주셨다.’
아들은 연고 포장지에 쓰인 몇 글자 중 하나를 골로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이후
“아들, 관절염은 다 나았어?”
하고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름하나가 다양한 추억을 만드니 이 또한 재미있는 관심이다.
이제는 잊고 지냈던 사람들의 이름들을 하나씩 꺼내 불러본다. 불러서 꽃이 될 이름들이 많다. 서운하고 속상했던 이름도 다시 부르면 세월 앞에 옅어져서 가벼운 이름이 된다. 고마운 이름도 부르고 싶고, 미웠던 이름도 부르고 싶다. 그렇게 부르고 나면 그들도 나의 빛깔에 맞는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지 않을까. 보잘것없던 내가 꽃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오늘 밤에는 날마다 코를 골아대는 옆지기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겠다. 어리둥절 나를 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같이 살면서도 이름을 부르는 것에 인색했다. 아내라는 이름,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책임을 먼저 물었다. 수줍게 서로를 불러 주던 때는 연애 때뿐이다. 오늘 이 순간 이름을 부르면 우리는 서로의 꽃이 되어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