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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Dec 17. 2023

언양

아름다운 이름 언양

 언양


  지척에 두고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언양을 돌아봤다. 지인의 권유로 함께 나선 문화재 답사였다. 곁에 두고도 무심히 넘겼던 고장의 문화재를 꼼꼼히 살펴보니 역사적 가치나 의미가 더 새롭게 다가왔다. 

 꽁꽁 언 손을 비비고 호호 입김을 불어 녹이며 천천히 걸었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을 정리하듯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 폰에 저장된 묵은 이미지를 지웠다. 


 옛 성인의 배움을 담당했던 언양 향교엔 아이를 얻고자 열심히 돌을 갈았을 성혈이 인상 깊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손을 얻는 일은 마음이 쓰이는 일이다. 나 역시도 삼대독자 외며느리로 시집와 대를 잇지 못할까 급급했던 마음이 있었기에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못했다. 

 향교 초입에서 입덕문에 이르기까지 세워진 비석들엔 한세월을 허망이 보내기보다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번뿐인 우리의 삶에서 욕심을 버리고 남을 먼저 생각한다면 나도 기억되는 이름이 되지 않을까. 옛날에도 배우는 곳엔 어김없이 홍살문을 세워 신성한 영역이니 마음을 가다듬으라고 한다. 


 ‘사람이 바로 하늘이다.’ 평등사상을 널리 전파하고자 했던 동학의 근원인 인내천 바위를 내려와 간월사지에 드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석조여래좌상이 낯설지 않게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오후 화장산 등산길은 땀을 흘릴 정도로 가파르다. 목표를 향해 천천히 느리게 가라고 만들어 놓은 길 같다. 책을 읽되 조금 더 어려운 책을 골라 읽고 무슨 일이든 빨리 끝내려는 마음을 버리자고 다짐도 해 본다. 


 화장산 정상에 자리한 화장굴, 그곳엔 옛날 곰이 살았다고 한다. 깊고 넓은 동굴엔 지금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무엇을 기원하는 것인지 정성을 다해 불공을 드리는 한 여 불자의 진지함에 불자가 아닌 내 마음마저 절로 숙연해진다. 곰에 물려 죽은 부모를 찾기 위해 화장산을 찾았다가 추위로 얼어 죽은 남매의 이야기와 그 남매를 가엽게 여긴 부모가 죽어 한그루의 복사꽃으로 피게 했다는 전설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불교 사적만 돌다가 모처럼 언양 성당을 찾으니 조금은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전시관 가득 자리를 채웠던 외국 선교사들의 사진 속 얼굴에는 비장함 마저 느껴진다. 오래된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핍박을 피해 몰래 미사를 드리던 공소가 가장 많은 곳이 언양 성당의 특징이라 한다. 

 외진 동굴 속에서 남몰래 미사를 드리며 성모 마리에게 어떤 것을 빌고 갈구했을까. 그들의 기도가 답이되 지금 남은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도 같다.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는 만정헌,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언양읍성이 고개를 내밀고 사람들의 관심을 바라고 있다.


 우리의 뿌리를 아는 일은 우리의 땅을 지키는 일만큼 중요하다. 틈만 나면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이웃 나라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일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알게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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