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뒷자리 풍경은 따뜻한가?
안동에 가면 까치구멍집을 볼 수 있다. 부엌을 안으로 들인 까닭에 환기를 시킬 만한 공간이 필요했던지 지붕 위에다 까치가 드나들 만한 환기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집 문지방을 넘어보았다. 주인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먼 곳으로 가버렸다. 훗날 누군가 자신의 흔적을 짚어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잠시 나의 뒷자리는 어떤 느낌으로 타인의 눈에 비칠까 생각했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남편이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이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감정과 싸운다. 나의 감정과도 싸우고 타인의 감정과도 싸운다. 상처받으면, 세상이 갈색빛으로 변하는 것처럼 아프고, 상처를 주면 돌부리에 발이 걸린 것처럼 불편하다.
우리는 매일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 나의 뒷자리를 적당히 조율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주인 떠난 빈집은 흙먼지만 일어나 손님을 맞는다. 방마다 폴폴 날리는 먼지가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한다. 부엌에는 솥단지를 잃어버린 아궁이 하나가 고개를 쏙 빼고 있다. 아궁이는 솥단지까지 홀랑 들고 떠나 버린 주인이 야속한지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옛날 집들은 모두 부엌을 따로 두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까치구멍 집은 부엌이 안에 있어 그 모양이 이상하다.
까치구멍집 주인은 아내의 수고를 들어주고 싶어서 부엌을 안에다 둔 것 같다. 요즘 집들과 유사하다. 땀 흘리며 차리는 여름 밥상이나 손끝이 아리도록 시린 겨울, 밥상을 받기가 미안했던 주인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옛 전통 가옥의 방식이었다면 아내가 그런 호사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의 편리를 먼저 생각했던 주인의 마음이 새삼스럽다. 그 옛날 아버지도 주인과 같은 생각을 하였던 것일까.
지난날 아버지도 요상한 집 하나를 지었다. 안채와는 조금 떨어진 터에다 올린 집이었다. 안채 옆에 붙어 있는 집이니 집이라고 하기보다 방 하나를 더 낸 것이 맞겠다. 그러나 아궁이를 내고 그 위에 지붕까지 얹어 완성했으니 집의 모양새는 다 갖추었다. 번듯한 집의 모양은 갖추었지만, 그 집은 일반 여느 집과는 다른 것이 있었다.
아궁이는 있으되 굴뚝이 없는 집이었다. 아버지는 굴뚝 대신 환기팬을 달아 연기를 뽑아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면 꼭 환기팬을 돌렸고, 혹 환기팬 돌리는 것을 잊고 그냥 불을 지필 때면 연기가 아궁이 밖으로 돌아 나오곤 했다.
아버지가 그 집에 특히 애정을 쏟은 것은 까치 지붕 집을 만든 주인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젊어서 산후조리를 못 했던 어머니는 춥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겨울에 따끈한 구들장에 앉아 있어도 늘 어깨가 시리고 춥다고 했던 어머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가 보기에 딱했던 모양이다. 황토를 다져서 발라 집을 만들었다.
굴뚝이 있는 아궁이는 장작불이 붙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환기팬을 단 아궁이는 환기가 잘되어 장작도 빨리 타고 방도 쉽게 데울 수 있었다. 황토로 만든 집이라 그 온기가 오래도록 머물렀다. 어머니를 위한 아버지의 배려 때문인가 어머니는 물론 유년의 나도 그 방에 있을 때가 가장 아늑하고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찬 바람을 막아 아늑한 집에는 살펴야 할 것들이 많다. 까치구멍집도 마찬가지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나오는 그을음, 연기, 음식을 데울 때 나는 냄새들을 해결해야 한다. 환기가 잘 돼야 사람도 살 수 있다. 안으로 감싸고돌아서는 안 될 것들은 밖으로 내보내야 집이 숨을 쉰다.
부엌에서 나오는 것들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 십상이다. 주인이 마련한 궁여지책은 그 쓰임이 잘 맞아떨어졌다. 문을 마주 보게 만들어 맞바람이 잘 통하게 하였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지붕 위에는 까치집만 한 구멍도 뚫어 두었다. 그 구멍을 통해 위쪽 외부 공기가 집 드나들기가 자유롭게 되었다. 주인의 마음이 뻥 뚫린 환기통처럼 좋아 보인다.
남편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남편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 뒷자리의 풍경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