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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09. 2024

1.갖신 짓는 아이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길게 이어진 수평선 위로 증기선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증기선에 솟은 굴뚝에서 까만 연기가 하늘을 갈랐다. 동희는 증기선이 바다를 가로질러 부두를 향해 올 때면 그 웅장함에 매료되어 넋을 놓고 보았다. 

 “늦지 않게 배달해야 한다. 현감을 지내신 분의 신발이니”
  아버지가 신신당부했지만, 동희는 증기선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다 보고서야 자리를 떠났다. 아버지가 이틀에 걸쳐 만든 목이 높은 가죽신이었다.

 아버지는 항구 외곽에 있는 작은 판자촌에서 5대째 갖바치를 본업으로 생계를 꾸렸다. 항구를 벗어나자 사람들로 붐비는 저잣거리가 나타났다. 째깍째깍 가위 소리를 내며 엿가락을 흔드는 엿장수가 동희 앞을 지나쳐가자 동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동희는 거리에 있는 상점들에 진열된 상품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물건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증기선이 실어 온 서양 물건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세상이 크게 변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조 현감댁 문 앞에서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러자 조 현감댁 집사인 이서기가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와라.”

 안으로 들어가자 조 현감이 장독대 옆에 있는 작은 화단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화단에는 물기를 머금은 물망초가 고운 빛깔로 빛났다.

 “가죽신 배달왔습니다.”

이서기가 동희가 들고 있던 가죽신을 조 현감 발 앞에 놓았다. 조 현감이 가죽신을 신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다시 벗었다. 그러고는 요리조리 돌려보다가 동희에게 던지듯 말했다.

 “신 잘 짓기로 소문난 네 아비답지 않구나. 볼이 좁고 앞코가 뭉텅해서 발이 편하지 않다. 다시 만들어달라고 해라.”

 조 현감이 휙 돌아서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여러 곳에 배달을 갔지만 이렇듯 박대를 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서기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다시 지어야겠다. 나으리 고집은 아무도 못 꺾는다.”
  동희는 아버지가 침침한 눈으로 가죽신을 짓는데, 들인 공을 알기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갖바치를 찾으라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알면 화를 낼 것 같아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네 손에 든 것이 뭐냐? 배달을 간 게 아니냐?”
 아버지 장덕신이 의아한 듯 물었다.

 “새로 지어 오래요. 볼이 좁고 앞코가 뭉툭해서 발이 편하지 않대요.”
 동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냐?”

장덕신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 신발이 좋다고 야단들인데 그 댁은 참 나빠요.”
  “아니다. 내가 신을 잘못 지은게지.”

 “아마도 시장 안에 서양 구두점이 생겼는데 그 구두가 좋은게지.”

이웃에 갖신을 짓는 상두아제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톡 쏘듯 말했다.
  “서양 구두요?”
  “그래 요즘 드나드는 증기선에 구두를 들여와 파는 가게가 생겼단다.”
 상두아제가 깊은숨을 쉬었다.

 “그럼 우리가 만드는 신은 어떻게 해요?”

 “금방 어떻게 되기야 하겠니?”

장덕신이 풀죽은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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