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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09. 2024

4.갖신 짓는 아이(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조 현감 올 날이 오늘이었다. 동희은 허탈한 마음으로 조 현감 집으로 갔다. 조 현감이 헛걸음하게 둘 수 없었다. 때마침 조 현감이 출타 준비를 마치고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 뒤를 이서기가 따라왔다.

 “동희 아니냐?”

 이번에도 조 현감이 동희를 반갑게 맞았다.

 “나으리 죄송하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갖신을 짓지 않겠대요.”
  “아니 왜?”
  조 현감이 궁금한 듯 물었다.

 “나으리께서 가죽신을 퇴짜 놓으신 이후 갖신은 쳐다보지도 않고 백정이 신을 짚신만 지어요. 이제는 갖신이 구두를 못 당한다면서.”

 동희가 눈물을 훔쳤다. 갖신은 자신에게도 꿈과 희망이었다. 그런 갖신을 놓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이 아이와 다녀오겠다.”

 조 현감이 이서기가 들고 있는 보자기를 받아들었다. 조 현감 말에 이서기가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꾸벅 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희는 나를 따라오너라.”

 조 현감은 마을을 벗어나 풀숲을 헤치고 산언덕을 넘었다. 동희는 영문을 몰라 조바심을 내다가 감히 묻지 못하고 말없이 조 현감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 후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무덤 앞에 조 현감이 섰다. 그러고는 보자기를 풀고 여주댁이 싸준 음식과 장덕신이 지은 가죽신을 무덤 앞에 놓았다. 

 “어제는 아버님의 기일이었느니라. 나는 해마다 아버님의 기일에 가죽신을 선물한단다. 아버님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지. 사람은 걸음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그래서 발에 신는 신은 짓는 이의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네 아버지가 지은 신을 퇴짜 놓은 것이란다. 네 아버지의 마음이 혼란스러우니 신이 예전 같지 않았던 것 같구나.”

 동희는 그제야 조 현감의 마음을 알게 되어 부끄러웠다. 갖신에 대해 진심을 가진 분은 오히려 조 현감이라는 것을.

 “공교롭게도 돌아가신 아버님과 내 발 크기가 같다. 그래서 내가 신어보고 신발을 골랐지. 네 아버지에게 오늘의 일을 전하거라. 나는 이 세상 누구의 신보다 네 아버지의 신을 최고로 친다고 말이다.”

 조 현감과 헤어진 동희는 서둘러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조 현감과 산에 올랐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동희 이야기를 들은 장덕신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저도 갖신을 만들고 싶어요. 저도 아버지처럼 조선 제일의 갖바치가 되어 사람들이 걷는 걸음을 아름답게 꾸며 주고 싶어요.”
  “동희야.”
  아버지가 동희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서양 구두 때문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내가 부끄럽구나.”

 “패트슨 나으리께 드릴 갖신은 아깝게 되었어요.”

동희는 안타까움에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덕신이 옷장에서 색이 고운 여자용 갖신을 꺼냈다. 

 “이것은 갖신?”
  동희가 놀라서 물었다.

 “네 어머니를 위해 만든 신발이다. 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허전함을 달래려고 몰래 만들어 둔 거란다. 갖신을 신고 빨래터로 가던 내 어머니가 참 고왔지.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 보곤 했단다.”

 “어머니를 위한 신발이잖아요. 보낼 수 없어요.”

 “아니다. 이제는 네 어머니를 보내야지. 언제까지 기대고 살 수 없지 않겠니? 이제는 너에게 갖신 짓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줄게.”

 “정말이요?”
  “그래. 누군가는 우리의 신이 좋다는 것을 알아주시는 분이 있겠지. 조 현감 어른처럼 말이다.”

 “아버지!”

동희는 어머니의 갖신을 들고 서둘러 조 현감을 찾아갔다. 혹시나 늦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걸음이 빨라졌다. 힘차게 달려서 조 현감 댁에 갔지만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동희는 곧장 구두점으로 달려갔다. 때마침 구두점 앞에 인력거 하나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인력거를 뒤로 하고 조 현감이 서 있었다. 

 “잠시만요.”

 동희가 인력거 앞을 막아섰다. 조 현감이 돌아서다 말고 동희를 보았다. 인력거 안에 있던 패트슨이 얼굴을 쑥 내밀었다. 동희가 갖신을 패트슨에게 주고 고개를 숙였다.

 “동희야!”

 조 현감이 다가와 동희를 불렀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려고 정성을 다해 만든 갖신이에요. 꼭 살펴봐 주세요.”
  조 현감이 패트슨에게 동희의 이야기를 전했다. 패트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인력거꾼에게 출발하자고 손짓했다.

 조 현감이 동희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말했다. 

 “꼭 좋은 소식이 왔으면 좋겠구나.”

 동희가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재주를 인정해준 조 현감이 고마웠다. 갖바치의 아들이라고 차별하는 다른 어른과는 많이 다른 어른이었다. 

 며칠 후 아버지 없이 혼자서 갖신을 짓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백정 촌에 짚신 배달을 나간 뒤였다. 이서기가 찾아와 동희를 불렀다.

 “나으리께서 다녀가래. 저기 시장통 앞에서 기다리고 계셔.”
  동희는 패트슨 나으리가 가져간 갖신이 궁금해서 헐레벌떡 달려갔다. 조 현감이 책을 고르며 동희를 기다렸다. 

 “나으리”
  동희가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갔다.

 “동희야.”

 동희를 본 조 현감의 낯빛이 어두웠다.

 “패트슨 신부님한테 전갈이 왔다. 갖신 대신 구두를 선택하기로 하셨단다.”
  “왜? 구두인가요?”
  실망한 동희가 물었다.

 “갖신이 편하고 좋긴 한데 많은 양을 대기에는 구두가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구두는 필요한 만큼 만들 수 있지만 갖신은 만드는 데 신간이 걸리지 않니.”

 “네.”

 “동희야. 내가 갖신이 필요한 곳을 찾아보마.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조 현감이 동희의 머리칼을 쓸어주었지만 쓰린 마음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갖신이 이렇게 구두에 밀리면 영영 갖신을 찾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동희가 아버지한테 갖신 짓는 기술을 배운다고 해도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조 현감과 헤어져 돌아온 동희는 차마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못 하고 시간만 보냈다. 아버지가 또다시 갖신 짓는 일에 손을 놓을까 두려웠다.

“현감 나으리께는 아무 소식이 없니?”
  “아직이요.”

 동희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며칠을 힘없이 보내고 있는데 조 현감이 급하게 동희를 찾았다. 

 “동희야 집에 있니?”

 “나으리께서 누추한 곳 까지 어쩐일이세요?”

 “혹시 갖신 지어놓은 거 있니? 급하게 필요해서 말이야.”
  “갖신요?”
  “그래, 패트슨 나으리가 어젯밤 급한 걸음을 하셨구나. 구두점에서 받기로 한 구두에 문제가 생겼다는구나. 급하게 여러 개의 구두를 만들다 보니 색이 바래거나 밑창이 떨어져 나가서 쓸 수 없는 구두가 많았다지 뭐냐? 그래서 갖신이라도 있으면 사겠다고 한다.”

 조 현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덕신이 앞에 나섰다. 

 “그동안 팔지 못하고 남은 갖신이 있습니다.”
  장덕신이 광에서 갖신이 든 자루를 들고 나왔다. 장에 내다 팔려고 미리 포장해 둔 것들이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이웃에도 갖바치 장인들이 만들어 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곧 많은 양의 갖신이 동희의 짚 앞마당에 쌓이기 시작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필요한 만큼 가지고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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