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미정 Aug 09. 2024

3.갖신 짓는 아이(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쳇! 너 오늘 제삿날인데 맘 좋은 나으리께서 봐주신 거야. 요즘 서양에서 들어온 구두를 신지 가죽신을 누가 신냐? 앞으로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다. 썩 꺼져.”

 이서기가 주머니에서 은전을 꺼내어 동희 손에 쥐여주고는 밖으로 쫓아냈다. 밖으로 쫓기듯 나온 동희는 이서기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신값을 받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을 쥐어뜯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 현감댁과 멀어졌으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와 함께 신을 지어 파는 갖바치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큰일이야. 이제 우린 뭘 해서 먹고사나.”

 아저씨들이 웅성거렸다. 아버지의 한숨도 길게 이어졌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동희가 아저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물었다.

 “관아에서 이제 우리가 지은 갖신을 받지 않겠다는구나.”

 “아니 왜요?”

 “서양에서 들여온 구두를 신겠단다.”

 아버지의 발 앞에 갖신이 흩어져 있었다. 한때는 서로 사겠다고 줄을 서도 못 살 만큼 인기 있는 갖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재주꾼이라고 칭찬받았던 아버지의 손끝도 쓸모없어지고 말았다. 동희는 훗날 아버지의 신 만드는 솜씨를 이어받아 큰 장사를 할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꿈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 갖신 팔아볼게요. 분명 아버지의 솜씨를 알아주는 분이 계실 거예요.”

 “네가 무슨 수로 세상을 거스르겠다는 거냐?”
  장덕신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동희는 아버지의 갖신을 들고 시장으로 갔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구두 점포 앞에 갖신을 펼쳐놓았다. 지나던 사람들이 잠시 갖신을 곁눈질했지만, 이내 서양 구두로 시선을 돌렸다. 구두점 주인이 나와 눈살을 찌푸렸지만 별 관심 없다는 듯 들어가 버렸다.

 “갖신 사세요. 우리 발에 꼭 맞는 갖신이 왔어요.”

 동희가 목청껏 소리쳤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책방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값을 깎고 깎아서 한 켤레 사 갈 뿐이었다. 동희는 해가 기울도록 한 켤레밖에 갖신을 팔지 못해 울적했다. 

 항구에 증기선이 들어오기 전에는 주문이 밀려들던 갖신을 이제는 시장에 내다 팔아도 사 가는 사람이 없었다. 동희는 갖신을 주섬주섬 챙겼다. 아버지한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었는데 조 현감 일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그때 구두 점포 앞에 조 현감과 노랑머리 서양인이 나타났다. 조 현감과 노랑머리서 양인은 구두를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희는 조 현감 볼 낯이 없어 얼른 그 자리를 뜨고 싶었다.

 “너 동희 아니냐?”

 조 현감이 동희를 먼저 알아보고 알은 체 했다. 동희가 급하게 갖신을 챙기다가 갖신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갖신 팔러 온 거냐?”

 “네.”

 그때 구두 주인이 편해 보이는 구두를 들과 나와서 조 현감에게 건넸다.

  “이 구두라면 선교활동을 하시는 분들께 꼭 맞는 신발일 것입니다.”

 구두 주인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 현감이 구두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동희가 떨어트린 갖신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노랑머리 서양인에게도 갖신을 보여주었다.

 둘이 나누는 대화는 처음 들어보는 외국말이라 뜻을 알 수 없었다. 조 현감의 이야기를 들은 서양인이 구두와 갖신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무게도 가늠해 보고 직접 신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다 서양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고 곧 조 현감이 동희에게 그 뜻을 전했다.

 “미국에서 온 패트슨이라는 선교사란다. 혹시 여자가 신을 갖신도 있는지 묻는구나. 네가 여자가 신을 갖신을 만들어 온다면 구두와 함께 가져가서 신어 보고 전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데 가능하겠니?”

 조 현감의 말에 동희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못 만드는 갖신이 없어요. 꼭 마음에 드는 갖신을 지어 드릴게요.”
  동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사흘 후에 너희 집으로 가마, 그때 갖신과 구두를 받아 선교사님을 뵈어야겠다.”

 조 현감이 미소 지으며 구두 주인과 동희를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이 떠나자 구두 주인이 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갖신 따위가 구두를 넘봐? 쳇! 점포 앞에 전을 펴도 불쌍해서 봐줬더니.”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동희는 구두 주인의 꾸지람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루빨리 갖신을 지어 서양 선교사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동희는 아버지의 솜씨를 믿고 있었기에 가슴이 뛰었다. 아버지는 분명 마음에 들 만한 갖신을 지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동희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동희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는 갖신을 짓지 않겠다고 뒤로 물러났다.

 “아버지 왜 안 짓겠다는 건데요?”
  동희가 팔짝 뛰었다.

 “어차피 안 될 일이다. 조 현감을 봐라. 가죽신을 두 번이나 퇴짜 놓지 않았니? 세 번째 가죽신은 네가 성화를 대니 불쌍해서 받아준 거고. 어제 시장에서 이서기한테 들었다.”

 실망한 동희는 밥도 안 먹고 고집을 부렸지만, 아버지는 백정이 주문한 짚신만 만질 뿐 통 갖신 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 현감이 찾아오기로 한 날에도 아버지는 짚신만 지었다. 아버지 때문에 동희의 속은 타들어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이 신을 지을 걸 후회가 되었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어도 동희도 아버지 어깨너머로 신 짓는 기술을 익혔다. 

작가의 이전글 2.갖신 짓는 아이(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