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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09. 2024

2.갖신 짓는 아이(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장덕신이 또 꼬박 이틀 밤을 새워 가죽신을 지었다. 가죽신을 짓느라 손가락에 파랗게 멍이 들었다. 이번에는 장덕신이 직접 조 현감을 찾아갔다. 그 뒤를 동희도 따라나섰다. 혹여 조 현감이 트집을 잡을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대문 문고리를 몇 번 두드리자 이서기가 대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댓돌에 상두아제가 말한 서양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보기에도 윤기가 흐르는 탐스러운 구두였다. 곧 조 현감이 사랑채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고는 흠흠 헛기침하고 장덕신을 맞았다.

 “색이 마음에 안 드네. 내가 원하는 색은 이런 가죽이 아니야.”

조 현감은 또 엉뚱한 트집을 잡았다.

 “네?”
 장덕신이 움찔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너무하세요. 천한 갖바치라고…. 차라리 구두를 신으세요.”

동희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대접을 받고도 굽신거리는 아버지가 안타까웠다. 
  “뭐라고? 이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놀란 이서기가 눈을 부릅뜨고 동희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아이고 한 번만 봐주십시오. 아들놈이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그만.”

놀란 장덕신이 이서기의 팔을 붙들고 사정했다.

 “그만하게.”

조 현감이 이서기를 말렸다. 

 “사흘의 말미를 주지. 다시 만들어 오게.”

조 현감은 뒤돌아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장덕신과 동희는 허탈한 마음으로 조 현감댁을 빠져나왔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가죽신을 지을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으로 갔다. 그때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서양 구두를 파는 양화점이었다. 양화점 앞에 구두를 사겠다고 줄을 선 사람과 구경꾼들이 몰려 북새통이었다. 장덕신과 동희가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동희는 서양 신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지만 차마 아버지한테 가보자 소리를 못 했다. 덕신은 집으로 돌아와 묵묵히 가죽신을 만들었다. 가죽신이 완성되자 동희를 불렀다. 

 “이 가죽신을 조 현감댁에 전해드려라.”

 “아버지가 안 가시고요?”

 “나는 관아에 보낼 갖신을 손봐서 다녀와야겠다.”
  장덕신이 잠시 미뤄두었던 갖신 꾸러미를 들고 왔다. 관아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덕신이 만든 갖신 스무 켤레를 사 갔다. 덕신의 솜씨가 좋다고 3년째 덕신의 갖신만 찾았다. 덕신은 관아에서 특별한 말이 없어도 늦은 여름이면 갖신을 만들어 관아를 찾아갔다. 

 “혹여 이번에도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시 만들어드리겠다고 전해라.”

가죽신을 들고 집을 나서는 동희의 뒤통수에 대고 덕신이 말을 뱉었다. 동희는 덕신의 말에 대꾸 없이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도 퇴짜를 놓으면 앞서 만든 가죽신 값을 다 물어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조 현감 어른의 신발을 만들지 않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매를 맞아도 할 말은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세상이 변하면 사람도 변해야 하는데 매번 갖바치는 천한 대접을 받으니 화가 났다. 

나라님이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모두가 평등하다 하였는데 깊숙이 파고든 차별은 곳곳에 남아서 동희의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 조 현감댁 대문을 두드리자 이서기가 문을 열어주었다. 

 “가죽신 가져왔어요.”

동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으리가 지금 출타 중이시다. 마루에 놓고 가.”
  “싫어요. 나으리한테 지금까지 만든 가죽신 값 받기 전에는 안 돌아가요.”

 “어라, 이 녀석이 겁도 없이.”

이서기가 혀를 내두르며 입을 떡 벌렸다.

 “네 맘대로 해라. 불호령이 떨어져도 난 몰라.”

 이서기가 빗자루로 마당을 쓸었다. 마루에 걸터앉은 동희가 먼지 때문에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한 식경을 한자리에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저렸다. 이서기는 안채와 바깥채를 오가며 화단에 물을 주거나 사소한 집안일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부엌일을 하던 여주댁이 잠시 나와 장독을 닦다가 동희를 보았다. 그러고는 누룽지를 가져와 동희에게 주었다. 여주댁은 조 현감댁 하인으로 있다가 면천이 되었지만 갈 곳이 없어 현감댁 찬모로 살고 있었다. 이서기에게 동희의 사정을 듣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 같았다. 다리가 저려서 코에 침을 바르고 있는데 대문이 열리고 조 현감이 들어왔다. 조 현감을 따라 노랑머리 서양인도 함께 들어왔다.

 “나으리 오셨어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서기가 달려와 굽신 절을 올렸다.

 “그래. 별일 없었고?”

 조 현감이 노랑머리 서양인을 사랑채로 안내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동희와 눈이 딱 마주쳤다.

 “너는 갖바치 덕신의 아들 동희구나.”

 “가죽신을 새로 지었습니다.”
  동희는 조 현감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데 살짝 놀랐지만, 금방 마음을 거두고, 마루에서 내려와 가죽신을 조 현감 발 앞에 놓았다. 조 현감이 노랑머리 서양인을 곁눈질하다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지금 바쁘니 나중에 신어보마.”

조 현감이 동희를 피해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동희가 가죽신을 조 현감에 앞에 다시 놓고 말했다. 

 “가죽 신값을 주시기 전에는 못 돌아갑니다요.”

 “뭐?”
  조 현감이 놀라서 우뚝 멈춰서서 동희를 보았다. 노랑머리 서양인도 동희를 빤히 보았다. 

 “아버지의 신 짓는 솜씨는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르신의 가죽신을 짓느라 손해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헤아리신다면 앞서 돌려보내신 가죽신 값도 쳐주시지요.”
  “이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이서기가 동희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밖으로 끌어내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좋다. 내가 신어보마.”

 조 현감이 가죽신을 신고 마당을 걸었다. 그러고는 가죽신을 벗어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맞아, 바로 이 신발이야.”
  조 현감이 끌끌 웃었다.

 “그래, 이제야 가죽신이 마음에 든다. 네가 말 한대로 돌려보낸 신값까지 쳐서 주마.” 

조 현감이 고갯짓하자 이서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 현감은 바삐 노랑머리 서양인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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