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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09. 2024

1.마음을 달게 하는 엿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단아가 무연을 데리고 개성떡집에 엿을 대는 날은 잔칫날이었다. 두둑한 돈주머니를 받고 시장통 국밥집에 가서 고깃국을 먹을 수 있었다. 아홉 살 무연은 공짜로 국밥을 얻어먹는 게 미안했던지 엿을 싼 보자기를 자기가 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떨어트리면 안 돼. 다음 장에도 엿을 싸야 하니까.”
  “나도 알아.”
  무연이 뾰로통한 입을 쑥 내밀었다. 단아가 열 한 살 되던 해 할머니는 단아에게 엿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엿 만들 조청은 따뜻한 곳에 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굳어서 못 써.”

 밥을 짓고 엿기름을 넣어 끓인 식혜를 달여 조청을 만들고 굳혀서 엿을 만드는 동안 할머니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엿 반죽이 적당히 굳으면 이웃 할머니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양쪽에서 반죽을 잡아당겼다. 그러고 나면 엿가락이 만들어지고 할머니가 툭툭 가위로 잘랐다. 무연이 천방지축 문을 열면 다정하던 할머니도 큰소리를 냈다. 엿은 찬바람을 맞으면 굳어서 바삭한 식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개성떡집과의 거래를 큰 자랑으로 여겼다. 개성떡집은 나라 행사에 떡과 한과, 엿을 대었는데 최상품만을 고르는 안목이 널리 알려져 그 집과 연이 닿는 것만으로도 할머니의 엿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궁이에 불을 때던 할머니가 가마솥 앞에서 쓰러졌다. 가마솥 안에는 엿을 만들 고두밥이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었다. 이후 몸져누운 할머니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단아. 가여운 것,”

 할머니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엿을 만들어라. 이 할미를 대신해 최고의 엿을 만들어.”

 “할머니 없이 어떻게 엿을 만들어요?”

 단아가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 손을 잡았다.

 “힘들게 만든 엿일수록 사람의 힘든 마음을 어루만진단다. 어려워 말고 사람의 마음을 달게 하는 엿을 만들어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단아는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넋을 놓고 우두커니 있었다. 무연이 배고프다고 하면 밥을 주고 단아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며칠 후 이웃에 사는 안성댁이 찾아왔다. 안성댁이 군불을 때고 있는 단아 옆에 앉아서 솔가지를 분질러 넣으며 말했다.

 “무연이는 어디 가고?” 

 “낮에 애들이랑 놀고 와서 피곤한지 잠들었어요.”

 안성댁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부터 단아의 집안일을 도와주었던 고마운 분이었다. 단아는 안성댁이 고마워서 뭔가 보답하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단아야 내 말 잘 들어라. 네 동생 무연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는구나. 이참에 무연이를 좋은 집에 보내고 너도 내가 살 곳을 알아보마.”

 “무연이랑 떨어져 살라는 말씀이세요?”

 단아는 놀란 나머지 말소리가 떨렸다.

 “무연이랑 떨어지기 힘들다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무연이가 굶는 것보다야 좋은 집에 가서 호강하며 사는 게 좋지 않겠니?”
  “싫어요, 무연이는 제가 데리고 살 거예요.”

 “무엇을 해서 먹고살 거니? 할머니도 없는데.”

 안성댁이 안쓰러운 얼굴로 물었다.

 “엿이요. 엿을 만들 거예요.”

 “잘 생각해 보아. 내 또 다시 오마.”

 안성댁이 돌아가고 맥없이 앉아 있던 단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잘못하다가는 무연이를 남의 집에 보낼 수도 있었다. 정신을 차린 단아는 제일 먼저 집 안 이곳저곳을 쓸고 닦았다. 방을 닦고 부엌에 쳐진 거미줄도 걷었다. 

 무연이 부엌문을 잡고 단아가 하는 양을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청소를 마친 단아는 가마솥에 물을 붓고 솔로 빡빡 씻었다. 단아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무연이 눈치를 보다가 걸레를 빨아서 안방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무연아, 언니가 할게.”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어.”

 무연이 물을 잔뜩 머금은 걸레를 흔들자 물이 뚝뚝 떨어졌다. 단아가 무연이 든 걸레를 힘껏 짠 다음 무연의 손에 쥐여 주었다. 무연이 빙그레 웃으며 걸레를 받아 바닥을 걸레로 훔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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