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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09. 2024

2.마음을 달게 하는 엿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언니가 이제야 언니 같아.”

 “뭐?”

 무연이 가마솥 뚜껑을 닦다 말고 무연을 보았다.

 “언니 나 무서웠어. 나 멀리 보낼까 봐.”

 무연이 걸레질을 멈추고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너 이야기 들었구나.”

 “응. 나 보내지 않을 거지? 언니랑 같이 살래.”

 무연이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단아가 달려가 무연을 꼭 안아 주었다.

 “언니 너 안 보내. 절대로. 엿을 만들 거야. 조선 최고의 엿”

 단아도 눈물을 흘렸다. 둘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다가 까르르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대.”

 단아가 무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뿔나도 좋으니까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

 무연이 웃었다.

 “언니가 웃을 일 많이 만들어 줄게.”

 “언니 엿 만들 수 있어? 엿 만드는 거 힘들잖아.”

 “만들 수 있어. 할머니한테 배웠는걸. 할머니가 사람을 달게 하는 엿을 만들라고 하셨어. 꼭 그렇게 할 거야.”

  단아가 속으로 다짐했다. 사람들이 좋아할 엿을 만들기로 할머니의 마지막 당부도 있었지만 무연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다음 날 단아는 가마솥에 쌀을 부어 안치고 고두밥을 만들 군불을 지폈다. 불 조절이 힘들어 몇 번이나 불을 꺼트린 후에야 활활 타는 불꽃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고두밥은 알맞게 익어서 엿기름을 넣은 식혜도 가뿐히 만들 수 있었다. 조청을 끓이는 동안 안성댁이 단아를 찾아왔다. 열심히 불을 지피는 단아를 보고 말했다.

 “엿을 만들기로 한 거니?”

 “네. 엿을 만들어 팔 거예요. 무연이는 절대 보내지 않을 거고요.”
  “이런 녀석, 네가 무연을 지킬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니.”

안성댁이 단아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엿 당길 때 불러. 내가 일손을 구해볼게.”
  “번번이 고마워요.”
  단아가 발그레한 얼굴로 웃었다.

 “살려고 하는 일인데 도와야지.”

 안성댁이 미소 지었다. 

 “엿 만들기는 고된 일이야.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해.”

 며칠 후 안성댁과 동네 아낙의 도움을 받아 첫 엿을 만들었다. 단아는 엿을 가지런히 썰어 담고 보자기에 쌌다. 

 “제법인데.” 

 안성댁이 첫 엿을 깨물어 맛을 가늠해 보며 말했다.

 “맛이 어떤가요?”

 단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글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개성떡집에서 받아줄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고. 열심히 만들었으니 기다려보자. 안성댁이 단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음날 단아는 엿을 들고 개성떡집으로 향했다. 떡집에 도착하자 떡집 주인 장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일은 안되었구나. 그런데 엿을 네가 만들었니?”

 “네. 맛을 봐 주세요.”
 장씨와는 할머니와 엿을 팔러 오면서 안면을 튼 터라 단아는 조금 편안한 마음이었다. 

 “맛이 괜찮구나. 가지고 온 엿을 내가 다 사마.”
  “정말요?”

 “그래.”

 장 씨가 웃으며 엿값을 치렀다. 단아는 자신이 만든 첫 엿을 흔쾌히 받아준 것이 고마워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개성떡집을 나오자 무연이 종종거리며 달려왔다.

 “천천히 와 넘어져.”

단아가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지만, 무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언니 어떻게 됐어? 엿은?”

 “다 받아주셨어. 우리 국밥 먹으러 가자.”

 단아가 무연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진짜?”

 무연도 따라 웃었다. 단아는 무연이 손을 꼭 잡고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뭐니 뭐니 해도 시장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시장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오는데 보름에 한 번 열리는 우시장 공터에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싶어 다가가니 악공이 악기를 연주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이 소리는 팥떡을 몰래 훔쳐먹은 개똥이란 놈이 뒷간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서 길게 내지르는 소리요.”

 작은 원통에 줄을 걸고 긴 막대기로 소리를 내니 정말로 개똥이 똥 싸는 소리처럼 들려서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무연이도 사람들 틈에 끼어서 까르르 웃었다.

 “아저씨 저건 뭐예요?”

 무연이 옆에 장대같이 서 있는 아저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물었다.
  “저건 해금이라는 악기란다. 사람들은 깡깡이라고 부르지.”
  “소리가 너무 재미있어요.”
  단아도 악공이 펼치는 재주를 넋을 놓고 보다가 무연이처럼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동안 맘고생 했던 것이 눈이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저기 생선 훔쳐 먹다 들킨 고양이 놈이 장독 밑으로 들어가는 소리네그려. 이이이 야아 옹”

 악기 소리가 마치 고양이 소리처럼 들려서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악공이 소리를 높일 때마다 악공 앞에 놓인 그릇에는 은화와 함께 동전들이 쌓였다. 구경한 값이었다. 단아와 무연은 해금 소리에 이끌려 맨 앞자리로 나와 있었다. 그러다 구경값을 내야 하는 것을 알고 흠칫 놀랐다. 악공과 눈이 마주치자 스스로 움츠러들었다. 개성떡집에서 받은 돈은 다음 엿을 만들 쌀값으로 남겨놓아야 했다.

 “아저씨 이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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