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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09. 2024

3.마음을 달게 하는 엿(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그때 무연이 주머니에 싼 엿 한 가락을 악공에게 주었다.

 “무연아 그건 구경값이 아니야.”

 놀란 단아가 무연에게서 엿을 빼앗으려 했지만, 악공 손이 더 빨랐다. 

 “먹음직한 엿이구나.”

 그러고는 엿을 입으로 가져갔다.

 “제가 만든 엿이에요.”

 “단맛이 제대로 구나.”

 “구경값을 드릴게요.”

 “그럴 필요 없다. 이 엿이면 되었다.”
  악공은 해금을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쌌다. 그러고는 떠날 준비를 마쳤다. 

 “지금까지 들어 본 소리 중 최고였어요.”

 아저씨가 힐긋 단아를 보았다.

 “네가 만든 엿도 최고다.”
  아저씨가 눈을 찡긋하고는 저잣거리로 사라졌다. 단아는 아저씨의 해금 소리와 엿이 최고라고 말하던 아저씨의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보름 후 단아는 정성스럽게 엿을 만들었다. 엿을 만들지 않는 날에는 삯바느질하거나 잔칫집 부엌일을 도왔다. 모두가 안성댁이 자리를 만들어 준 덕이었다. 단아는 안성댁이 고마워서 가끔 안성댁 집을 찾아가 나무를 해주거나 마당을 쓸어주었다. 안성댁이 밭일하는 동안 막내 길동이를 봐주며 시간을 보냈다.      

 보름 후 개성떡집에 엿을 대기로 한 날이 되었다. 단아는 좋은 엿을 만들기 위해 잠을 설쳐가며 엿을 만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개성떡집에 엿을 대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소문때문이었다. 심지어 이웃에 사는 종삼이 아버지도 개성떡집에 엿을 대겠다고 했다.

“언니! 종삼이 아버지가 성황당 앞을 빠져나가는 걸 봤어.”

언덕 위에서 연을 날리던 무연이 싸리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창호지를 자르고 끈적한 조청을 발라서 만든 연이었다. 여기저기 찢어져서 볼썽사나운 연이지만 무연이는 뭐가 좋은지 찢어진 연도 하늘을 잘 난다며 즐거워했다.

 “바람이 찬데 고뿔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단아가 눈을 흘기며 무연의 손을 잡고 호 입김을 불었다.

 “참 내 정신 좀 봐 서둘러야 겠다.”

 단아가 황급히 엿가락이 담긴 대바구니의 뚜껑을 닫고 보자기로 쌌다. 종삼이 아버지가 성황당을 빠져나갔다면 많이 늦은 것이다. 개성떡집은 나라에 진상하는 떡을 만드는데 지금은 일을 키워서 혼례를 올리는 폐백음식까지 맞춘다고 했다. 그동안은 할머니 엿이 근방에서 크게 인정을 받아 개성떡집에서는 할머니 엿만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단아가 무연과 함께 개성떡집 문앞에 당도할 무렵 종삼이 아버지가 빈 보자기를 들고 개성떡집을 나왔다. 단아가 꾸벅 절 하고 돌아서는데 종삼이 아버지가 단아를 불렀다. 

 “들어갈 필요 없다.”

 “네?”

 단아가 영문을 물라 우물쭈물했다.

 “장씨가 이제 네 엿을 받지 않겠다고 대신 전해달라고 하더라.”

 종삼이 아버지 말에 단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난번에 받은 엿도 거지 움막촌에 나누었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네가 불쌍해서 받아주긴 했지만 이제는 안 되겠다고 미안해하더라.”

 종삼이 아버지가 차마 단아의 눈을 바로보지 못하고 서둘러 떠났다.

 “미안하구나. 나는 이만 바빠서.”

 단아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붙박여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지난 번 개성떡집에서 말 한마디 없이 엿을 사 줄 때 알았어야 했다. 단아가 아무리 엿을 잘 만들어도 할머니의 손맛을 따라가기란 역부족이라는 것을 단아 자신이 더 잘 알았다. 단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했다.

 “언니!”

 무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단아를 보았다.

 “가자.”

 “어디로?”

 “시장으로. 엿을 팔아야지.”

 단아가 힘없이 발걸음을 돌리자 무연이 종종거리며 뒤를 따라왔다. 시장 안에는 이미 엿장수 아이가 엿을 팔고 있었다. 딸깍딸깍 가위 소리를 내는 엿장수 아이들 틈에서 단아는 과연 엿을 팔 수 있을까.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엿을 팔아야 했다. 엿장수 아이들이 없는 곳을 찾다 보니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전을 폈다. 찬바람 때문에 얼굴이 얼어 시큰거렸다. 무연이 추위에 오돌오돌 떨었다. 단아가 무연을 꼭 끌어안고 호호 입김을 불어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갓 쓴 노인이 엿을 팔아주었다. 

 “어린것들이 고생이 많구나. 어른은 안 계시냐?”
  “네.”

 “헛 그것참”

 노인은 끌끌 혀를 차며 엿을 들고 사라졌다. 오후가 되자 기온은 더 내려가서 거리에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무연을 생각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엿을 하나라도 더 팔아야 내일 먹을 보리죽이라도 살 수 있었다. 무연은 엿을 꼭꼭 씹으며 추위를 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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