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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09. 2024

5.마음을 달게 하는 엿(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단아가 쌀을 사기위해 들른 싸전에서 개성떡집에 받는 엿이 찹쌀엿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종삼이 아버지가 찹쌀엿을 만들줄은 꿈에도 몰랐다. 찹쌀은 식감이 좋고 부드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엿이지만 찹쌀은 값이 비쌌다. 단아의 처지로는 감히 만들기가 어려운 엿이었다. 할머니는 멥쌀로도 달고 고소한 엿을 만들었다. 단아는 할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엿을 만들었지만 찹쌀로 만든 엿을 따라가기란 어려웠다. 

 단아는 엿을 만들어 이웃의 먼 마을까지 엿을 팔러 갔다. 동이 트기 전 새벽에 나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되었다. 그러나 할머니 손맛이 깃든 멥쌀엿으로도 충분히 식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날도 단아는 파장을 앞둔 시장통을 돌면서 엿을 팔았다. 그러다 채소를 파는 작은 공터에서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해금 아저씨였다. 단아는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자네같은 실력자가 이런 곳에서 해금을 연주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네. 내가 어른께 말해서 자네를 다시 궁으로 불러 들이겠네.”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아저씨 손을 잡고 말했다. 단아가 보기에 궁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처럼 보였다. 임금님 행차 때 뒤따르던 사람들이 입었던 옷과 같았다.

 “그만하게 나는 이대로 족하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음악이라면 어디에서 연주하던 무슨 문제인가?”

 “하지만 자네 실력이 아까워서 그러지.”
  악공인 친구는 크게 한숨 쉬고는 고개를 떨구고 돌아갔다. 아저씨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해금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저씨!”

 “단아 아니냐? 여긴 어쩐 일로?”

 아저씨가 놀라서 물었다.

 “엿 팔러 왔어요.”

 “무연이는 잘 있고?”

 아저씨는 무연을 끔찍이 여겼다. 

 “아저씨가 주신 돈으로 쌀을 사고 엿을 만들어 팔았어요. 무연이도 잘 있어요.”
  “다행이다. 무연이 그 녀석이 자꾸 아른거려서 말이야.”

 아저씨가 웃었다. 

 “아저씨가 주신 돈은 꼭 갚을게요.”

 “갚으라고 준 돈이 아닌데. 마음가는 대로 하렴.”

 아저씨 옆에 단아가 나란히 걸었다.

 “그런데 궁궐에는 왜 안 들어간다고 하셨어요? 궁궐에서 연주하는 게 아저씨의 꿈 아니었어요?”

 “한때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요?”

 “나는 사람들이 내 재주를 보고 시름을 잊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다. 궁에서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야. 그리고 궁에 들어가면 친한 친구 사이라도 또 경쟁하고 싸우게 된다. 그럴 바에야 마을을 돌며 이렇게 사는 것이 보람 있구나.”

 아저씨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너는 어떠냐? 개성떡집에 다시 엿을 대겠다는 꿈은 그대로인 게냐?”
  “오늘 돌아가면 간밤에 이불속에 묻어 둔 굳은 조청으로 엿을 만들 생각이에요. 그 엿을 들고 개성떡집에 가 보려고요. 이제는 할머니의 손맛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단아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반드시 할머니의 손맛을 살려서 개성떡집에 엿을 대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네가 꼭 해낼 거라 믿는다.”

 “무연이도 보고, 저희 집에 가세요.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드리고 싶어요.”
  “괜찮대도 그러는구나”

 “아저씨를 보면 무연이도 좋아할 거예요.”

무연이 보고 싶다는 말에 아저씨도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아저씨도 마을을 떠도느라  제대로 씻지 못해 몰골이 말이 아닐뿐더러 수염도 덥수룩하게 나 있어 잠시 정착할 집을 찾고 있던 터였다.

 “비어 있는 방이 있어요. 아저씨가 계시고 싶은 만큼 계셔도 돼요.”

 단아가 수줍은 듯 말했다.

 “그래. 알겠다.”

 단아 말대로 무연이 아저씨를 보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저씨 그동안 어디에 계셨어요? 이제 우리랑 함께 살아요. 네?”

무연이 아저씨한테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이런 녀석!”

 아저씨도 무연을 번쩍 들어 올려 빙그르르 돌렸다. 무연이 까르르 웃었다.

 “우리 무연이 배 곯지 않고 살지?”
  “배는 안 고픈데 살코기가 들어간 국밥이 먹고 싶어요.”

 무연이 단아의 눈치를 보며 귓속말을 했다. 단아가 살짝 눈을 흘겼지만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우리 오늘 저녁은 무연이 좋아하는 고깃국 먹으러 가자.”

 “아저씨, 제가 밥을 지을 거예요.”

 “아니다. 며칠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으니 내가 밥을 사마.”

 모처럼 셋이 나란히 국밥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이 셋이 모이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꼭 가족이 된 것처럼 웃고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무연은 아저씨와 한참을 놀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이른 새벽 안성댁과 동네 아낙들이 단아의 집에 모였다. 

 “저 분이 너를 도와준 그분이냐?”
  안성댁이 아저씨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단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성댁이 아이들을 도와주어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엿당기기를 시작할 때쯤 아저씨는 방 안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군불을 지폈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엿이 굳지 않으려면 방 안이 따뜻해야 했다. 군불을 지필동안 무연은 아저씨 옆에서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아저씨는 그동안 마을 돌며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방안에는 구슬땀을 흘리며 엿 당기기가 한창이었다. 모두가 도와준 덕에 단아가 원했던 식감의 엿이 탄생했다.     

 단아가 알맞게 자른 엿을 상자에 담고 색이 고운 비단보자기로 곱게 묶었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법이니 말이다. 개성떡집 앞에 선 단아가 크게 심호흡을 하자 아저씨가 단아의 어깨을 가만히 두드려 주었다. 그동안 엿을 만들었지만 개성떡집에 보낼 생각을 못했다. 단아가 만든 엿을 맛 보여 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언니 잘해.”

 “그래.”

 단아가 개성떡집 안으로 들어가자 장 씨가 주판을 두드리다 말고 단아를 보았다.

 “너는?”
  “저 기억 하시지요? 할머니때부터 엿을 만들어 파는 단아예요.”

 “그래 알지.”

 장씨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엿을 만들었어요. 할머니의 손맛만큼 맛을 내려고 공을 들였고요. 맛을 봐 주세요.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내치셔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 엿은 찹쌀엿이냐?”

 “멥쌀로 만든 엿이에요.”
  “우리는 이제 찹쌀엿만 받는다.”

 “멥쌀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할머니처럼요.”

 단아의 간절한 부탁에 장 씨가 상자에 들어 있는 엿 한 조각을 물고 맛을 보았다. 한참동안 맛을 음미하던 장 씨가 단아를 보았다.

 “맞구나 네 할머니가 만든 엿이랑 같아. 할머니의 손맛을 살리다니 대단하구나.”

 “그럼 이제 제 엿을 받아 주시는 건가요?”

 단아가 감격에 차서 큰 소리로 물었다. 

 “엿 가져왔습니다.”
 그때 문을 열고 종삼이 아버지가 들어오다가 멈칫 놀라서 단아를 보았다.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엿을 가져왔어요.”

 단아는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가끔 들려서 엿 만드는 기술을 배워 갔던 종삼이 아버지가 미워서 말 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종삼이 아버지가 엿 보자기를 내려놓고 장 씨를 보았다. 장 씨가 난처한 듯 말했다.

 “이 아이가 자기 엿을 받아달라고 하네.”

 “그건 안 될 말입니다. 계속 제가 만든 찹쌀엿을 받아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저 아이가 가져온 엿이 담백한 맛이 돌고 식감도 좋아서 말이야. 이제 찹쌀엿이 물린다는 사람도 있고.”

 장 씨가 말끝을 흐렸다.

 “제발 받아 주십시오. 엿을 대지 못하면 배 속에 아이를 가진 아내와 아이들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듭니다.”

 종삼이 아버지가 단아를 곁눈질하며 간절한 눈빛으로 장 씨를 보았다. 종삼이 아래로 셋이 있는데 또 아이를 가졌다니 단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정이 딱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나? 이 아이도 그동안 힘들게 살지 않았나.”

 장 씨는 종삼이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했지만 종삼이 아버지는 물러서지 않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결국 개성떡집에 엿을 대는 일 때문에 한 이웃에 사는 또래인 종삼이 아버지와 원수가 될 것 같았다. 종삼이 가끔 무연이 연날리기 할 때 감긴 줄을 풀어 주기도 하고 떡을 나누어 준 적도 있었다.

 “됐어요. 저는 개성떡집에 엿을 대지 않겠어요.”

 “뭐라고?”

장씨가 의아한 듯 물었다. 

 “저는 저자에 엿을 팔거예요. 종삼이 아버지 엿을 계속 받아주세요.”

 “단아야.”

 종삼이 아버지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한없이 부끄러운 얼굴이었다. 단아는 엿 보자기를 들고 개성떡집을 나왔다.

 밖에서 단아가 오기를 기다리던 아저씨와 무연이 달려가서 단아가 든 보자기를 받아들었다.

 “방금 종삼이 아버지가 들어가는 걸 봤다. 네 엿을 받지 않겠다고 한 거냐?”
  아저씨가 물었다.

 “아니요. 제 엿을 받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종삼이 아저씨 아주머니가 아기를 가졌대요. 종삼이네는 이제 여섯 식구가 된 거예요.”

 아저씨는 단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한 일이다. 네 엿은 이제 어디서나 알아주는 귀한 엿이다. 그걸 잊지 마라.”

 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무리의 아이들이 아저씨를 찾아왔다. 

 “아저씨 재미있는 재주 보여 주세요.”
  뒤 이어 시장 상인들도 하나둘 아저씨한테 모여들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게요?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저씨가 놀라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저씨 보여 주세요. 저도 아저씨의 해금 연주가 듣고 싶어요.”

 단아의 말에 아저씨가 잠시 망설이다가 해금을 꺼냈다. 아저씨는 해금을 보물처럼 가지고 다녔는데 가져오기를 잘 한 것 같았다. 아저씨는 지금껏 들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곡을 연주했다. 궁궐에서 선보였던 연주곡인 것 같았다.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 이제 재미있는 소리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저씨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고양이 울음부터 다양한 재미난 소리들을 들려주어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을 웃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장기라도 되는양 아저씨도 같이 떠들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단아가 엿 보따리를 풀어놓자 너도 나도 엿을 사겠다고 몰려들었다. 구경하면서 먹는 엿은 입을 즐겁게 해 줄 최고의 간식이었다. 엿은 순식간에 팔려나가 금방 동이났다. 공연이 끝나자 구경 값을 내고 사람들이 돌아갔다.

 “날을 정해 공연을 좀 해 주시오. 우리들의 큰 낙이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그럼 열흘에 한 번 이곳에서 공연을 펼쳐보이지요.”

 “네 엿도 꼭 가져와라. 엿을 먹으면서 보니까 더 재미가 난다.”

 “저도 꼭 같이 올게요.”

 단아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와 함께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저씨가 왜 궁 악사의 길 대신 저자에 머무는 지 알 것 같아요. 오늘 제 엿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어요. 제 엿이 꼭 개성떡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나도 같은 생각이란다. 우리 쭉 같이 다녀야 할 것 같은데. 너는 어떠냐?”

 “저도 좋아요. 아저씨 재주도 구경하고 엿도 팔고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세상에 없을 것 같아요.”

 단아가 환하게 웃었다. 아저씨도 기분 좋게 웃으며 천천히 걸었다. 두 사람이 걷는 길에 벚꽃이 하늘하늘 꽃비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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