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by 탄주


산 위에 있는 바위는 아래에 있을 때보다 에너지가 많다. 왜냐면 내려오면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 바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위치 에너지는 운동에너지로 바뀌고 땅에 떨어진 순간 위치 에너지도 운동에너지도 0이다. 그럼 에너지가 없어졌을까? 아니다. 땅에 떨어진 바위와 떨어진 자리는 따뜻하다. 즉 열에너지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열도 식는다. 결국 처음의 에너지가 없어졌을까? 그럴 리가. 열이 주위로 퍼진 것이다. 아마도 지구의 온도를 아주 아주 조금 올렸을 것이다. 에너지는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4자 성어가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이다. 세상을 살아본 사람은 경험상 이 말이 진실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반대도 진실이라고 믿는다. 즉 감진고래(甘盡苦來)이고 낙 끝에 고생이 온다. 게임에서 이긴다고 희희낙락하다가 쓴 맛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진 주식이 오르면 달콤하지만 내릴 때를 대비해야 한다. 사랑이 순조로울수록 파탄을 준비해야 후유증을 줄일 수 있다.

세상은 고진감래와 감진고래의 파동이다. 아이가 들어섰음을 알았을 때의 감(甘), 출산의 고통(苦), 귀여운 아기를 보는 감(甘), 아기가 아파서 병원을 다닐 때의 고(苦), 처음 일어서서 걸을 때의 감(甘).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은 고(苦)와 감(甘)이 번갈아 교차되는 파동이다.

빨간색의 S극과 파란색의 N극이 표시된 막대자석이 있다. 이 자석의 가운데를 자르면 N극과 S극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자른 면에 N극과 S극이 생기면서 막대자석 두 개가 된다. 자석을 아무리 자르고 잘라도 N극 혹은 S극만 분리할 수 없다. 자석을 가루로 만들어도 가루 한 개에는 반드시 NS극이 동시에 존재한다.

고(苦)와 감(甘)이 번갈아 교차되는 인생에서 감(甘)만을 분리할 수 없을까? 고(苦)만 있는 인생 혹은 감(甘)만 있는 인생을 상상할 수 있는가? 노예로 태어나면 고(苦)만 있고 왕으로 태어나면 감(甘)만 있을까?

노예이기 때문에 누리는 감(甘)이 생각보다 많고, 왕이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아니 완전히 같다고 본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어떻게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고감(苦甘)의 양이 차이가 있다는 것은 상대성 이론에 어긋난다.


인간의 느낌은 완전히 주관적이므로 같은 일에도 사람과 처지에 따라서 고(苦)로 받아들일 수도 혹은 감(甘)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산해진미로만 식사를 하던 사람이 보통 사람의 식사를 하면 실망할 수 있고 굶었던 사람이 보통 식사를 하면 행복할 수 있다.

내가 과학고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과학고 학생들은 중학교 때까지 전교에서 5등 안에 들던 우수한 학생들이다. 이들이 과학고에 합격했으니 그 부모 형제는 행복했을 것이다. 1학년 중간고사가 과학고에 와서 첫 시험인데 그 결과가 발표되는 날은 학급 분위기가 침울했다. 이 우수한 학생들도 1등부터 꼴찌까지 석차를 내야 하고 반에서 거의 일등만 하던 학생들이 꼴찌도 있고 꼴찌에서 둘째도 있다. 반에서 일등은 한 명이므로 나머지 학생들은 이제까지 받아보지 못한 석차를 경험한 것이다.

과학고 근무를 마치고 중학교 때 학급에서 거의 꼴찌들만 모이는 학교로 전근을 갔다. 1학기 중간고사 발표가 되는 날은 반이 축제 분위기이다. 모든 학생들이 중학교 때 받아본 적이 없는 석차를 받아 본 것이다.

이 학교 학생 부모는 자기 아이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알려지는 것이 즐겁지 않을 테지만 학급에서 일등을 하고 장학금을 받는다면 이는 자랑스러울 것이다. 이 학교는 중학교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이면 과 수석으로 장학금을 받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