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요야의 파동이다
바다의 표면에서 항상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일까? 정답은 파도이다. 아무리 바람이 없는 날도 파도가 완전히 없는 경우는 없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공기가 있는 곳에 항상 일어나는 현상은? 정답은 음파이다. 음파를 감지하는 감각기관은 귀[耳]다. 우리의 주위에는 항상 소리가 있다. 아무리 조용한 밤이라도 멀리서 들여오는 개 짖는 소리, 자동차 소리, 풀벌레 울음소리 등 완벽히 조용한 경우는 없다. 소리가 크다는 것은 공기의 진동이 심하다는 것이다. 소리가 높다(음정이 높다)는 것은 공기가 빠르게 진동한다는 것이다. 모든 공기의 진동을 우리가 감지하는 것은 아니다. 소리의 진동수가 너무 낮거나(저음), 너무 높거나(고음)하면 우리는 이를 감지할 수 없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범위의 진동수를 가청주파수(可聽周波數)라고 한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듣는 것이 가능한 진동수라는 것이고 그 진동수는 대략 초당 20번에서 2만 번 사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 중에서 가장 낮은음은 공기가 초당 20번 진동할 때이고 가장 높은음은 공기가 초당 2만 번 진동할 때이다. 진동수가 2만 번을 넘으면 인간은 감지할 수 없지만 동물들 중 박쥐는 이 범위의 파동을 예민하게 감지하여 생활에 이용한다. 같은 높이와 같은 크기의 소리라도 피아노 소리냐 바이올린 소리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이를 소리의 맵시라고 한다. 소리의 높이(공기의 진동수), 소리의 크기(공기의 진동 폭), 소리의 맵시(공기의 진동특색) 이 세 가지를 소리의 3요소라고 한다.
물질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 물질의 진동이 발생하고 물 표면에서 파도, 공기에서는 소리, 땅 속에서는 지진이라고 부른다. 파동은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그 특징 중 간섭은 두 개의 파동이 만나면 진동하는 매질이 물리적으로 중첩하면서 제3의 파동을 만드는 현상이다.
진동수가 비슷한 두 소리를 동시에 울리면 맥놀이하고 부르는 특이한 소리가 나는 것은 두 파동이 간섭하여 만든 제3의 소리다. 회절은 좁은 틈을 지나는 파동은 틈을 지난 후 넓게 퍼지는 현상이다. 벽 너머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소리가 벽을 넘어서 아래로 퍼졌기 때문이다.
지구와 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파동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파동이라는 것은 매질이 진동하면서 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빛에 대해서 탐구하던 학자들은 빛이 간섭이나 회절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빛이 파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빛은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진공) 곳을 지나오는 것인가? 진공이 아닌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떤 물질이 있나? 당시의 일부 과학자들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그 물질의 이름까지 지어 놓았다고 한다. ‘에테르’라고.
빛을 감지하는 우리의 감각기관은 눈[目]이다. 빛도 파동이므로 진동수가 있고 진동수의 차이가 바로 색(色, color)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색 중에서 가장 진동수가 큰 색은 보라색이고 가장 진동수가 작은 색은 빨간색이다. 빨간색보다 진동수가 적어서 볼 수 없는 빛이 적외선(赤外線) 즉 적색 밖에 있는 빛이라는 뜻이다. 보라색보다 진동수가 커서 볼 수 없는 빛은 자외선(紫外線) 즉 보라색 밖에 있는 빛이다. 이렇게 보라색과 빨간색 사이의 빛만을 볼 수 있고 이를 우리는 가시광선(可視光線)이라고 한다. 즉 보는 것이 가능한 빛이라는 뜻이다. 적외선보다 진동수가 작은 빛이 엑스선(x-ray)이고 이보다 진동수가 적은 것이 전파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에테르’는 부정되었다. 우주 전체에 절대적으로 정지하고 있다고 예상되는 에테르가 존재하면 세상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 없게 되었다. 즉 절대적으로 정지한 물체인 에테르가 존재하면 그 물체에 대한 상대 속도가 정의되고 이는 우주가 공평하지 않은 것이 된다. 따라서 빛은 어느 위치에서 보아도 같은 속도로 측정되어야 한다. 심지어 빛의 속도로 따라가도 빛은 빛의 속도로 도망간다. 그래야 세상이 우세한 위치가 없이 공평하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결론이다.
지금 이 시간 카톡이 이 울리고 전화가 온다. 즉 전파가 도달되었다는 증거다. 전파는 가시광선 밖에 있어 볼 수 없지만 전 우주 공간에 항상 가득 차 있다. 전파의 진동수 범위는 상당히 넓어서 각각의 진동수에 따라 쓰임새가 다양하다. 라디오의 각 방송사 주파수, TV의 각 방송사 주파수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선택해서 듣거나 본다.
주식이 오른다. 어제도 올랐는데 또 오르고 있다. 일시적으로 내릴 때도 있지만 대세 상승이다. 그러나 계속 오를 수는 없다. 이 세상에 계속 오르기만 하는 주식은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 주식이 내린다. 어제도 내렸는데 또 내린다. 즉 주식의 오르내림은 파동이다. 내 주식이 오를 때는 기분도 좋고 왠지 행복하다. 요가 생기는 구간이라고 하자. 주식이 내릴 때는 기분이 침울하고 불행하다고 느낀다. 야가 생기는 구간이라고 하자. 주식의 오르내림에 따라서 우리의 기분도 오르내린다. 즉, 우리의 기분도 파동이다. 파동이라는 것은 높낮이가 반복되어야 한다. 높은 것만 반복되거나 낮은 것만 반복되는 것은 파동이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요야의 파동이다.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은 기다리라. 계속 기분이 안 좋을 수는 없다. 지금 행복한 사람은 근신하라. 계속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니 행복해 보이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은 지금 요야의 파동에서 요의 구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요보다 야가 많은 파동이나 야보다 요가 많은 파동의 없다. 그래야 세상이 공평하다. 자연이 공평하므로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공평하다.
노예와 그 노예의 주인이 누리는 요야가 다를까? 노예보다 주인이 맛있는 식사를 할 것 같다는 것은 관찰자의 관점이다.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노예가 먹는 하찮은 음식이 주인이 먹는 산해진미보다 얼마든지 맛있을 수 있다. 요야는 철저히 주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주인은 그 지위와 돈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고 나서 그때의 선택을 쓸데없이 후회하거나 그로 인해 불행할 수 있다. 노예는 주인에게서 주어진 정해진 삶이라 선택의 여지가 기 때문에 주인보다 후회나 선택의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가 많다는 것이 반드시 더 행복한 것이 아니다. 주인이 경험하는 요야의 파동과 노예가 경험하는 요야의 파동은 형태나 주기는 다르겠지만 결국 같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공평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