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갑수 Sep 17. 2021

시간의 문법 3

단편 소설

엄마가 내가 책을 읽으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본인이 전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책은 여기 수백 권도 넘게 있어요.


무턱대고 찾을 수가 없어서 사서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사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시선으로 검색전용 컴퓨터를 가리켰다.


사서의 말은 사실이었다. 키워드 검색을 했더니, 수백 개가 넘는 제목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동네 구립도서관은 국가별로 책을 분류해 놨다. 나는 미국에서 시작해서, 러시아를 돌아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에 들렀다가, 일본과 중국, 베트남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기분 탓이겠지만, 베트남에 갔을 때는 조금 더웠고, 러시아에 갔을 때는 약간 한기가 느껴졌다.


빠르게 내용만 살펴본 탓에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 상황과 완전히 같은 설정의 작품은없었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고, 곧 도서관을 닫는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할 수 없이 나는 아직 확인하지 않은 몇 권의 책을 대여했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당신들은 모두 좀비다』, 켄 그림우드의 『다시 한 번 리플레이』, 티옌 外 17인의 『타임루프 단편 걸작선』이었다. 한 층 위의 사회과학실에 들러 시간에 대한 물리학 책도 두 권 빌려왔다.


다섯 권의 책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다섯 권을 다 읽는 데 정확히 일주일이 걸렸다.


-수요일 두 시까지 8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도서관에 갔다.


-수요일 두 시까지 8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다시 도서관에 갔다.


-수요일 두 시까지 8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계속 도서관에 갔다. 타임루프가 아니더라도 시간과 관련된 것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활자를 읽는 속도와 내용파악이 점점 빨라졌다.


크로노스라는 인터넷 블로거가 있다. 그는 이 장르의 마니아인 모양인지, 자신만만하게 국내에 들어와 있는 작품은 전부 봤다고 공언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한 주를 반복하면서, 크로노스가 소개한 목록의 작품을 전부 다 읽었다.


텍스트가 쌓이면 유형을 나눌 수 있다.


현대 물리학은 기본적으로 시간의 가역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래에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어떤 형태로든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이야기를 할 때, 텍스트가 취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째, 아무리 환상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도 의미만 확실하면 괜찮다.


알프레스 베스터의 『므두셀라를 죽인 사나이』라는 작품이 있다. 젊은 물리학자가 주인공이다. 연구소에서 퇴근을 한 그는 자기 집 소파에서, 자기 아내와 친구가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는 곧바로 지하 실험실로 내려가서 15분 만에 타임머신을 만든다. 그는 44구경 매그넘을 챙겨서 과거로 간다. 그리고 어느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린다.


똑똑똑.


-실례지만, 스미스 씨 되십니까?

-전데요. 누구시죠?

-저는 불행히도 당신의 아들의 딸과 결혼하게 될 남자입니다.


탕. 탕. 탕.



[계속] 


작가의 이전글 시간의 문법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