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말했듯이 나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고 도서관에 갔다.
시간에 관련된 텍스트는 엄청나게 많다. 타임루프, 타임리프, 타임슬립, 타임워프, 타임터널, 타임패러독스, 미래를 보는 사람……. 매체도 가리지 않는다.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게임, 마블의 히어로 중에도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시간 능력자가 있다. 조금씩 설정은 다르지만,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결국 다 비슷하다.
-장르 자체가 하나의 공해가 되었다.
어떤 비평가는 그것들을 통틀어서 그렇게 평했다. 무분별하게 복제되는 작품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도 있고, 마니아층도 있고, 몇 편은 명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누군가 성공한 길을 따라가는 것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시간의 속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지속성과 편재성.
나는 이 공해를 우연한 기회에 몇 번 들이마셨는데, 의외로 상쾌한 적이 많았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돈이 되고,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공해가 아닌지도 모른다.
-말도 안 돼.
환상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지면 텍스트 안의 인물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텍스트를 아는 사람은 비현실적인 가능성이라도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거 뭔지 알아. 드라마에서 봤어.
실제로 엄마와 이모는 내가 타임루프에 갇혔다고 하자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각각 이렇게 덧붙였다.
-열심히 해봐.
-힘들겠구나.
그러니까 내가 도서관에 간 이유는 무엇이 힘든지, 뭘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도서관에 간 것은 3년 만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불편한 자세로 귀찮게 한 장씩 책장을 넘겨야 하고, 곳곳에 모르는 어휘가 나오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 하지만, 나는 상당히 많은 책을 읽었다. 우리 세대는 일정량 이상의 독서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
우선 어느 집에나 가구로 책장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으레 세계문학 전집 따위가 꽂혀있다. 친구, 친척, 회사 동료들 집,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집이란 책장이 있고 그곳에 세계문학전집이 꽂혀있는 공간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도 마흔두 권짜리 세계문학 전집이 있었다. 아버지가 고향 후배에게 속아서 산 거였다. 엄마한테 비싸게 샀다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아버지는 알면서도 속아준 모양이었다. 나는 마흔두 권을 다 읽었다. 책이 좋아서는 절대로 아니다. 다만, 수학 문제를 풀거나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보다는 책 읽는 게 나았다. 엄마는 신기하게도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학입시 제도를 만든 사람들도 엄마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방학 숙제, 독후감, 논술, 언어 영역, 책을 읽지 않고는 성적을 유지하고 대학에 갈 수가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알고리즘과 수학의 세계다. 그런데, 공학인증이라는 것이 있다. 그 인증을 받으려면 작문 수업과 고전 읽기 수업을 네 학기 동안 들어야 한다.
-텍스트 바깥은 없다.
고전 읽기 수업 시간에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모종의 공포와 절망 같은 것을 느꼈다. 그 말을 한 사람을 데려다가 어퍼컷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수업을 더 들어보니 텍스트는 오히려 책에 대립하는 용어였지만, 정의가 무엇이든 내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취업 준비를 할 때는 더 심했다. 때마침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프로그래머를 뽑을 때도, 경영지원팀 직원을 뽑을 때도, 면접에는 언제나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그것이 내가 하려는 일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 채,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읽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입시를 하고, 대학에 다니고 취직을 하려면 적어도 500권에서 100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런 시스템으로 설계가 되어 있다.
엄마가 내가 책을 읽으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본인이 전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