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솔직하게 나를 괴롭히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브랜드라는 배경이 없어도
나는 과연 잘 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너무 낭만적으로 다루고 싶지는 않다.
현실은 분명 냉정하다.
브랜드가 없는 개인은
이 시장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미팅을 잡는 일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출발선까지.
브랜드는 여전히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가장 빠른 언어다.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브랜드를 떠난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 더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그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을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는 이미 한 번
거의 아무도 모르는 브랜드와 함께
시작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H사를 시작했을 때,
그 이름은 지금처럼 알려져 있지 않았다.
시장에서의 인지도도,
명확한 기대치도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그때 나에게 있던 것은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라
이 업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감각,
사람을 설득하는 방식,
그리고 시간을 들여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각오였다.
물론,
그 브랜드를 키운 것이
나 혼자만의 공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함께한 동료들,
믿어준 파트너들,
같은 방향을 바라봤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브랜드를 빌려 일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도 함께 증명해왔다.
숫자가 잘 나올 때도,
어려운 순간을 통과할 때도
결정과 책임은
항상 사람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는 늘 서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본다.
브랜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브랜드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더 분명해지는 것이 있는 사람인가.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나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다.
지금도 나를 믿고
함께 일해보자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과거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태도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신뢰가
브랜드만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무모한 낙관으로 버티기보다는
한 번 해봤던 길을
다시 걷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려 한다.
브랜드 없이도 남아 있는 것들.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검증해온 경험이고,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온 신뢰다.
이번에는
그것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확인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