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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Apr 01. 2020

가지치기

뿌리 뽑히지 않고, 부러지지 않고 흔들리기만 할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뀔 때. 해가 달라질 때. 도로 위에 쌓인 나뭇가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잎을 다 잃은 채로 겨울을 보내고 난 나무의 가지들이 바닥에 쌓인다. 잘린 나뭇가지 위로 다시 초록이 올라올 것이다. 다시 자라서 봄과 여름을 그리고 가을을 치르며 계절을 살아 낼 테고.


어렸던 시간 어른이 되어가던 시간 그리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시간 동안 내게서 자라난 많은 가지들도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도 조금씩 잔가지와 굵은 가지들을 잘라내고 있다. 어떤 순간에는 내가 원치 않았지만 잘려나간 것들도 있다. 잘라낸 자리에는 상처와 함께 또 다른 잎이 자란다. 어떤 자리는 끝내 아물지 않기도 하여 종종 저리다. 잎이 자란다고 전혀 새로운 나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같은 나무인 채로 같은 자리를 잘라내기도 한다.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싶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언제는 차를 타고 가다가 가로수의 모양이 모두 직사각형으로 자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로 양옆에 늘어선 나무들이 마치 네모난 스틱 아이스크림처럼 보였다. 그리고 일정 지역을 벗어나니 다시 그저 무성한 나무들이 보였다. 누구였을까. 나무에게 모양을 만들어준 이가. 한동안 그 지역의 가로수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자랐다. 그 자리를 차를 타고 지나갈 때면 가로수를 바라보며 지났다. 그리고 늘 궁금했다. 누구였을까.


누가 나무에 모양을 줄 생각으로 가지를 쳤을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내 기대가 만든 희망사항일지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 그렇게 했기를 바란다. 가지치기 작업을 할 때, 자신이 관리할 지역을 할당받은 어떤 이가 가로수의 모양을 머리에 그리면서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가 그렸던 이미지를 잎이 무성해진 계절에 내가 볼 수 있었다. 누군가의 가지치기는 성공했다.


나의 가지치기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뭐 그렇다고 어떤 모양을 기대하고, 다다를 기준을 그려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시작한 줄도 모르고 끝내버린 경우도 다반사다. 내가 잘라낸 자리, 혹은 시간이 지나 보니 알아채지도 못한 사이 이미 가지가 죽어버린 자리도 있었다. 또는 자라날 틈도 주지 않고 잘라버린 가지도. 어떤 가지는 자라고 자라서 내 뿌리와 몸통의 모든 양분을 다른 잔가지와 잎을 틔우는데 들어가야 할 양분마저 끌어가기도 했다. 그 무성함에 나조차도 누가 몸통과 뿌리의 주인인지 헷갈리는.


지금 나는 내 몸과 뿌리까지 온 힘을 다해 그 무성한 가지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가지들은 시야에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비대해진 그 가지를. 분명 이렇게 균형을 잃다가 가지가 부러지지 않을까. 몸통도 뿌리도 버틸 힘을 잃고 휘청이다가 그저 부러져버리거나 뿌리가 뽑히지 않을까. 남은 계절을 살아낼 수 있을까. 나의 나무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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