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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Feb 20. 2021

표류하지 않고, 감자를 기르는 하루

2021년, 새해 인사를 나눈 지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친구는 한국이 아닌 곳에 살고 있다. 나는 벌써 2021년을 맞았는데, 친구는 아직 2시간 51분이 남았다고 했다.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마치 저 먼 우주에서 몇 억 광년을 가야 만날 수 있는 우주인과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같은 지구에 사는 우리에게 있는 시차. 거리가 주는 차이. 우리는 지금 SNS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다른 해를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영화 '마션'이 떠올랐다. 화성에서 보낸 연락이 지구에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 차.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가 외딴곳에서 사람과 맞닿을 수 있는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 친구와 새해 인사를 나누다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우주인이라 말하고 싶었다. 우주인. 나는 우주에 속해 있으니까, 우주인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굳이 우주 비행을 하기 위해 훈련을 하고, 공부를 해서 뉴스에 나올 법한 우주인이 될 필요는 없으니, 그냥 홀로 우주인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홀로 화성에 남겨진 마크를 생각한다. 그리고 방에 홀로 앉은 나를 생각한다.


마크를 화성에 두고 온 팀원들은 그가 죽었다 생각하고 지구로 돌아왔다. 물론 영화에서 마크는 살아남았고, 갖은 노력을 통해 지구와 다시 연결되었다. 그는 긴 시간을 화성에서 홀로 살았다. 우주인을 생각하다가 혼자 오래 살 수 있는 사람과 혼자 오래 살 수 없는 사람, 삶으로 생각이 옮겨진다. 결국 나와 가장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은 나구나, 싶은 생각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런 삶에서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매몰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마크가 홀로 화성에서 살았던 시간을 떠올린다. 동료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가지고 이어가는 생활. 매일 홀로 먹고, 자고, 계속 움직이던 사람. 영화로는 너무 짧지만 개인의 삶에서 그 시간이 얼마나 길까. 그리고 얼마나 더디게 흘렀을까. 다시 방에 홀로 앉아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는 나를 바라본다.


내가 애써 달아나려고 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몇 년 전, 벌써 해를 많이 넘겼다. 친구가 말했다.


"상대가 조금 일찍 죽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언젠가 죽음이라는 이별을 겪잖아요. 그게 조금 일찍 찾아온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나에게 죽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솟아나는 마음들을 누를 수 있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싶은 마음,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 당장이라도 찾아가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 상처가 깊다고 마음이 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묻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그런 나의 모습에서 달아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래서 내 안에서 그리고 삶에서 조용히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홀로 치른 장례는 너무 외롭고, 아팠다. 매일 웃는 얼굴로 만나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지만 정작 나는 웃고 있었나. 상처로부터 달아나고, 애써 바라보지 않으려 하는 동안 과연 나는 행복했을까.


바로 옆에 있어도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은 아무리 가 닿으려 해도 닿을 수 없는 우주 같다. 너의 우주로 가는 것이 그리고 네가 나의 우주로 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서로의 장례를 치르고, 더는 닿을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 사이가 된 것일까.


마크는 지구로 다시 돌아왔다. 우주인에서 지구인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아니 그는 꾸준히 삶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었다. 외롭지만 자신을 돌보고, 그에게 닿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우주인으로 사는 일은 외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외롭지만 나를 나로 바라봐 줄 사람을 만난다면, 그리고 나도 그를 보이는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같이 눈을 뜨고 일어나, 함께 눈을 감고 잠드는 삶을 다시 또 그려본다.


우리의 우주는 너무 멀다. 당장 내 옆에 있는 당신의 우주를 알기에도 내 삶은 터무니없이 짧다. 하지만 분명, 새롭고 또 아름다운 장면을 맞이 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지금은 내 우주를 조금 더 바라봐야겠다. 달아나지 않고, 삶에서 삶으로 나아가 표류하지 않고 감자를 기르고 당신의 우주에 닿기 위해 나만의 항해를 준비한다. 장례를 치르는 일은 뒤로 미루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닿기 위해 좌표도 알 길 없는 깜깜한 우주에 떠 있다. 하지만 장례는 조금 더 미루기로 한다. 아직은 누군가를 삶에서 지우는 것이 내게 행복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2021년에는 그것을 알았다는 것에 내 시작점을 찍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홀로 남은 방에서 노래를 듣는다. 어쩌면 이 노래가 어디로든 닿기를 바라며.


아주 작은 점으로 남은 마크를 발견하고, 그의 길을 줄곧 따라 간 민디처럼. 나의 점을 발견해 줄 누군가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두의 우주가 조금은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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