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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Feb 26. 2021

여전히 자라고 있으니까

살아남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힘들게 노력해서 해야 하는 일일까.


이사한 집은 빛이 들지 않는다. 급하게 구했지만 따듯하고, 아늑한 곳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달을 지나면서 나와 함께 온 식물들이 점점 시들어 가는 것이 보인다. 아무리 물을 갈아 줘도 잎이 시들해진다. 결국 잎도 줄기도 뿌리도 말라 흙만 남아버린 화분들을 정리했다.


"반지하에서도 잘 사는 애들인가요?"


이사를 하고, 두 어개의 화분을 살 때 내가 물었다. 빛이 잘 들지 않아도 내 옆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식물인지 확인부터 했다. 아무리 맘에 들어도 빛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살 수 없었다. 그럼 결국 버려야 할 테니까. 그렇게 새로 들인 화분은 물만 잘 주어도 괜찮았다. 일주일에 한 번. 듬뿍 물을 주면 일주일이 거뜬했다. 물에만 꽂아 둔 식물들은 뿌리가 새로 자라는 게 보이지만 잎들은 시들해졌다. 물을 갈아주고, 뿌리를 씻어 주기를 반복해도 자라는 속도는 더디고, 시들해지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새롭게 잎을 틔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아주 더지지만 조금씩 올라오는 새로운 줄기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어제도 물을 갈고, 자리를 옮겨 주었다. 한바탕 움직이고 나니 내가 사는 집의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몸에 살짝 열기가 돌았다.


시들해진 잎을 따라 줄기로 뿌리로 시선을 옮긴다. 작게 올라온 새 뿌리가 있다. 하얗게 삐죽이며 튀어나와 있는 뿌리. 정리하지 못한 잎은 이미 말라버린 채로 매달려 있다. 하지만 차마 잘라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둔다. 작게 자란 뿌리처럼 다시 새 잎이 돋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식물을 바라본다. 그래서 오늘도 물을 갈고, 뿌리를 씻어 주었다. 조용히 수면 아래에서 노력하고 있는 작고 연한 뿌리를 응원한다. 이렇게 어렵게, 힘들게 노력해야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 내는 매일에서 눈 돌리지 않기를 바라며. 빛이 들지 않아도 여전히 자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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