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되어서도 _ by SAZA.A
요즘은 조금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잠에서 깨는 시간은 이르지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시간이 늦어졌네요. 그게 어딘가요. 마음껏 뭉그적거리고 미처 떨치지 못한 잠을 다시 청하기도 하고요. 요 며칠은 일어나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탔어요. 15분 정도를 달려서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다시 15분 걸려 제 자리도 돌아와요. 겨우 30분이지만 그렇게 하나를 하고 나면 벌써 오후가 되어버려요. 씻고 마치 당장 밖으로 나갈 것처럼 채비를 해요.
옷장을 열고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을 합니다. 벌써 봄이라는데, 나는 아직 준비를 못했어요. 여전히 옷장에는 겨울 코트만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대체 뭘 꺼내 입어야 하는 걸까요. 음,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디자인은 좋아하지 않아요. 실루엣도 디테일도 너무 도드라지는 옷은 별로예요. 장바구니에 담아둔 옷들 중에도 썩 맘에 드는 옷은 없어요. 망했어요. 봄인데.
옷장에 그득한 옷을 보면서 늘 드는 생각이 있어요. 아마 다들 그렇지 않을까요.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을까. 작년의 나는 무얼 입고 다녔을까. 벗고 다니진 않았는데.'
숱한 망설임과 고민 후에 걸치는 옷은 결국 늘 같은 옷. 여지없이 걸치게 되는 옷. 계절마다 교복처럼 입는 옷. 거의 십 년이 된 것 같네요. 때마다 꺼내 입게 되는 옷을 다시 걸칠 계절이에요.
봄이면, 가을이면 늘 찾게 되는 코트가 있어요. 'WNDERKAMMER'라는 브랜드의 몇 해전 컬렉션에 있던 옷이에요. 화려하지 않지만 구석구석 숨겨둔 디테일이 마음에 드는. 크고 넓지 않은 깃, 소매를 걷어 올리면 보이는 다른 색의 안감, 올이 풀린 것 같은 코트의 끝단 처리. 그리고 무엇보다 입을수록 짙어지는 주름과 바래는 색. 옷을 입는 제 몸과 몸짓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한 벌을 더 샀어요. 몇 해 전에 같은 디자인으로 한 번 더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기회를 놓칠까 싶어서요. 이런 저를 두고 누구는 말했어요. 그 돈으로 다른 옷을 사라고. 왜 같은 옷을 사느냐고.
같은 가격으로 다른 옷을 살 수도 있겠죠.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산 옷이 제가 원하고, 저에게 알맞은 옷이 아니라면요. 또 다른 시행착오가 된다면요. 이제 저는 어떤 시행착오도 겪고 싶지 않아요. 이미 많이 겪었는걸요. 그렇다면 지금 가진 것의 수명을 늘리는 데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요. 내게 아주 잘 어울리는 이 옷, 할머니가 되어서도 입고 싶은 이 옷을 계속 오래오래 입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최근에는 아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어요. 기온이 많이 올라 더는 두껍게 옷을 입지 않아도 될 날씨였죠. 그래요, 그 코트를 꺼냈어요.
"그 옷 입고 왔네요? 오늘 만날 약속을 하면서 그 코트가 떠올랐어요. 잘 어울려요."
친구가 저를 만나자마자 인사보다 먼저 건넨 말이네요. 저를 떠올리면 함께 연상되는 옷이라니. 고민은 더 필요 없어요. 올해도 내년에도 앞으로도 쭉 입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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