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찬성이 필요한 요리 _ by SAZA.K
일 인분의 삶이란 숫자에 밝은 이에게 유리해요. 식사시간이 되면 그 사실은 더 선명해져요. 선택의 순간이에요. 남의 손으로 만든 것을 사 먹을지,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을지를요. 그날의 채소 시세와 식사의 양과 질, 만족감까지… 다각적 시선과 경제적 감각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카레, 곰탕, 떡볶이, 닭백숙…
그런 이유로 포기한 집밥 메뉴는 김밥천국 메뉴판보다 많아요. 야무지게 먹어보겠다고 만들고 나면 집에서 가장 큰 냄비가 넘쳐서 일주일은 넘게 강제 단일식을 하게 된 일이 많아요.
어느 날, 외식사업가 백종원의 요리 영상을 봤에요. 영상 중간에 그가 짜장에 대해 단호한 조언을 하는 것을 듣고는 순간 띵해졌어요. 아마도 소리 없이 입을 벌리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 근데 짜장은 사 먹는 게 맛있어요. 나가서 사 드세요. ”
그때야 깨달았어요.
‘아, 나는 아직도 식사를 고민하면서 집밥 폴더와 외식 폴더 정리가 제대로 안 돼있었구나. ’
하지만, 아직도 포기할 수 없는 메뉴가 있어요. 그건 바로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솥밥요리 빠에야 (paella)에요. 카레처럼 뭉근히 밥과 채소를 끊여내는 원팟(one-pot) 요리인데요. 스페인 현지의 소개 사진이나 소개 영상을 보면 우리나라 옛 명절 큰집 마당에서 가마솥 걸어놓듯 큰 냄비에 양껏 끓여서 여럿이 모여 먹더군요. 절대 1인분은 만들 수 없어요. 그리고 빠에야를 파는 식당은 흔치 않아요. 빠에야는 이렇게 저의 수고로움과 일정 명의 사람이 필요한 집밥요리 중에 하나로 채택되었죠, 친구 2명 이상을 집에 초대하게 되면 무조건 저는 빠에야를 대접해요. 예고 없는 않은 일방적 메뉴선택과 제공이지만, 먹어본 이들에게는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요. 처음이지만 맛은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밥요리의 느낌을 준다는 게 제 예상입니다.
올해 초에도 그랬어요. 머릿속에는 빠에야를 해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적당한 구실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애매한 시기에다가 빠에야를 먹기 위해 집안을 정돈하자니 까마득한 그즈음. 구정연휴 전날에 모이는 일인가정들 모임으로 친구의 집에 초대받았습니다. 모임 인원은 총 4명으로 확정이 되었는데, 그때 바로 빠에야를 떠올렸어요. 이전에 우리 집에서 빠에야를 먹어본 친구도 흔쾌히 좋다고 했고요. 명절 전야 모임 당일, 저는 빠에야 전용팬부터 재료를 모두 챙겨 모임 2시간 전에 친구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채소를 다지는 것과 이외 보조작업은 친구가 했고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친구는 모임의 호스트면서도 졸지에 빠에야 조리 보조를 맡았습니다. 요리의 전 과정과 시간을 오롯이 지켜본 친구는 맛있게 먹으면서도 고개를 저으며 이런 말을 남겼어요.
“ 다 만들고 차려줘서 먹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만드는 건 줄 알았으니까 이제는 못 해 먹겠다. 너무 고생스러워.”
생뚱맞은 구정 모임 메뉴여서일까요. 친구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을 내보인 탓일까요. 그 이후로 저는 빠에야를 만들어 먹지 못하고 있어요. 요즘 다시 찾고 있어요. 저와 함께 빠에야를 만들어 먹을 파티원을 말이죠.
여러 레시피를 참고한 끝에 정착한 나만의 빠에야 레시피 대공개
-흰 쌀을 씻고 미리 불려놓아요.
-마늘, 양파와 피망을 잘게 다져요. *
-예열된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선택한 주재료**를 겉만 익혀 건져요.
-주재료를 볶은 팬 그대로 위에 올리브유를 더 두르고 마늘을 넣어 향을 내요.
-그 위에 양파를 넣어 투명해질 때까지 볶아요.
-나머지 다진 채소와 불린 쌀을 넣고 살짝 투명해질 때까지 볶아요.
-약불로 줄이고 마트에서 사 온 빠에야용 마법의 가루***를 물에 풀어 2번에 나눠 넣어요.
-30분 정도 푹 익힌 후, 다진 생토마토나 토마토 파스트 소스를 넉넉하게 올려요.
-이제 맛있게 나눠먹어요. 취향 따라 위에 핫소스나 레몬즙을 살짝 뿌려먹어도 좋아요.
(주재료에 따라 앞이름이 바뀌는 변화무쌍한 요리예요. 이날 저는 이번에 닭다리살을 넣어서 치킨빠에야를 만들었죠.)
(*좋아하는 버섯과 채소를 더 추가해도 좋아요.)
(**주재료는 무엇이든 좋아요. 닭고기, 소고기 새우, 조개… )
(***원래는 샤프란과 치킨스톡을 넣지만, 저는 더 간단한 방법을 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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