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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Apr 22. 2020

궁금한 게 있어요

본인의 불안을 느끼나요

수면의 질을 높이려 병원을 찾았다. 대기자가 많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전에 도착해 오후가 되어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는 문 앞에 서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진료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자 문을 닫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가 모든 환자에게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다. 진료를 마친 환자가 나오고 문이 닫힌다. 그가 문을 열고 나와 다음 환자의 이름을 부른다. 환자가 들어가면 그가 문을 닫는다.


자리에 앉은 내게 그가 왜, 어떻게 왔느냐 물었다. 나는 요즘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서 왔다고 했다. 그가 물었고 나는 2주 정도 잠드는 게 어렵고, 잠들어도 새벽에 몇 번을 깨어난다고 말했다.


“잠을 잘 못 잔 게 최근인가요? 전에도 그랬나요?”


나는 이전에도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았었고, 지금은 같은 건물의 상담센터에서 상담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왜 상담을 받고 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단히 물어봤다. 그 앞에서 지난 2년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는 빠르게 키보드를 눌렀다.


“본인의 불안을 느끼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가족 관계에 대해 물었고 나는 빠르게 답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나를 차분히 살피는 걸 알 수 있었다.


의사와 나 사이에 주어진 아주 짧은 순간. 빠르게 묻는 그에게 나도 모르게 답했다. 타이핑하는 손, 차분히 묻는 목소리와 눈빛. 마주 앉은 나도 차분해졌다. 그리고 그가 물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잘 들리지 않아 내가 돼 물으니 그가 다시 말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아버지는 어디에 있어요?”


그에게 설명한 나의 가족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그가 그 존재에 대해 물었다. 몇 번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 내 시선이 그의 얼굴 너머를 향해 있었다. 대답을 하면서 내 시선은 벽으로, 허공으로 이동했다. 그 작은 공간에서 차 오르는 울음을 꾹 참았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요즘 기분 상태가 어떤 것 같아요?”


점심시간이 끝나는 알림이 울리면서 그가 마지막 질문을 했다.


“슬퍼요. 화도 나고, 우울한 것 같아요. 슬퍼요. 전보다 안정적인 것 같지만 그래도 슬퍼요.”


대답을 하면서 나는 슬펐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몇 번의 질문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그가 아픈 곳을 제대로 찔렀는지, 내가 그냥 아주 작은 자극에도 울게 된 것인지.


의사는 항우울제를 함께 처방했다. 함께 처방하는 약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단순히 수면의 문제만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볍다고 해도 나는 나의 불안과 우울을 알고 있고, 나는 앓고 있다. 어쩌면 오래도록 앓았을지도 모른다. 모른 척했거나 가볍게 넘겨도 된다고 여겼거나. 힘을 길러왔다고 생각했지만 난 그냥 힘을 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버티는 것에 익숙해져 상처를 계속 끓어 안고도 아픈 줄 모르는 사람. 어디가 다쳤는지조차 찾을 수 없는 사람.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잠깐 차올랐던 울음은 사그라들었다. 괜찮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일주일 후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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