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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y 02. 2020

일주일이 지났다

무너지고 싶었다

"일주일 후에 봐요."


인사를 하고 나온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너무 오래 기다린 탓에 지치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서 버스를 타고 집까지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내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더 힘들었다.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좋은 상태는 아니다. 우울증은 아닐지라도 매일이 우울하다. 매일이 불안하다. 나는 이렇게 불안하게 사는 삶이 싫다.


감정은 기억하지만 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와서 시간을 보냈을 텐데, 무얼 하며 보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매일의 차이를 찾지 못하고 그냥저냥 보내는 나의 하루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3시간 정도를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 그는 나의 일주일을 물었고, 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나열했다. 그는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울음 섞인 대답을 했다. 그는 내 눈물에 가벼이 말했다. 나는 다시 울고 있었다. 울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더 크게 울게 된다.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결국 하고 있다. 벗어나고 싶을수록 더 깊이 빠지는 곳에 있다.


"불안하고 싶지 않아요. 더는 불안 속에 살고 싶지 않아요. 늘 그랬어요."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안정되길 바랐다. 누구도 나에게 안정을 주지 않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내 앞에 놓인 것은 내 힘으로 바꿀 수도 없었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고,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스스로 원했고, 그 선택으로 행복했으며 또 안정을 얻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또한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더는 내 선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내가 선택하고 노력해서 달라질 수 있을까. 두통이 찾아왔다.


그는 종종 웃으며 나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몇 분, 길지 않은 시간. 나는 울었고, 그는 빠르게 키보드를 눌렀다. 그렇게 약을 조금 증량했다. 그가 일반적인 양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고 내게 말했다. 충분히 슬퍼할 시간.


나는 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잰걸음을 했다.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하지만 결국 같은 상황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보살피고, 나를 위해 슬퍼할 여유도 갖지 못했다. 나는 그저 불안에서 빠져나오고만 싶었으니까.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는 불안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아도 마주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말들 하지만 그것도 방법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경험치가 낮아 레벨업은 불가능한 세계처럼 보인다. 계속 바닥을 치니 기어오를 힘도 생기지 않는다.


어디에서 힘을 찾아야 할까. 나에게서 가능한 일이 아닌 것만 같다. 무너지고 싶었다. 결국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쓴다. 울기 싫은데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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