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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r 14. 2024

시간을 벌어봐야지

"생각보다 엄지의 관여도가 크지요?"


작년에 병원에 다니면서 들었던 말. 지난여름이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두 해 전쯤 오른쪽 어깨 통증이 시작됐다. 살면서 거의 사용할 일 없던 어깨를 단기간 과도하게 사용해서 인지 문제가 생겼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통증. 진단명은 석회성건염이라고 했다. 30대 이상,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증상. 참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삶을 살고 있구나 싶었다. 30대 이상, 남성보다 여성. 시류를 거스르지 않고 앓아야 할 통증을 고스란히 앓고 가는 사람, 나.


어깨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물리치료와 운동, 충격파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그런 와중에 손목 통증이 동반됐다. 병원에 갔더니 힘줄이 부어 간격이 좁아져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미량의 스테로이드를 섞은 약을 손목에 주사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통증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어깨 통증과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의한 손목 부위 피부색의 변화였다. 그렇게 어깨 치료에만 신경을 쏟으며 해를 보냈다. 대략 1년 반의 시간을 보낸 후에 어깨도 잠잠해졌다. 다행히 손목 피부도 제 색을 찾아갔다. 그런데 어깨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얼마 후, 정말 자고 일어났더니 손목이 너무 아팠다.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일어난 변화. 물건을 집을 수도, 펜을 쥐고 글을 쓸 수도 심지어 타자를 치는 일, 핸드폰을 쥐는 일조차 어려웠다. 일상을 보내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하는 고통이 계속되었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통증에 어떻게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이어지는 생활.


일주일에 3일은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가는 곳마다 손목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뿐. 손목 건초염. 침, 물리치료, 약물 치료도 근본적으로 손목을 낫게 할 수 없었다. 결국 시간을 들여야 끝나는 일. 상할 대로 상해버린 손목의 건초가 회복할 수 있도록 사용을 최소화하고, 스트레칭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뿐.


집안일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손목에 테이핑을 하고, 보호대를 하며 생활했다. 어느 날엔 통증이 좀 잦아진 것 같다가도 조금만 손을 잘못 움직이면 다시 크게 아팠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겨울로 바뀌었다. 병원도 이곳, 저곳. 그러던 중 병원 한 곳에서 진료를 받다가 들었던 말.


"생각보다 엄지의 관여도가 크지요?"


생각보다. 생각지도 못한 크기의 쓰임이었다. 생활 전반, 대부분의 움직임에 엄지가 관여하고 있었다. 젓가락 질을 하다가. 양치질을 하다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문을 열다가. 그냥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다가 몇 번은 주저앉아 울었다. 정말 너무너무 아파서.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고, 무엇으로도 가라앉지 앉는 통증에 눈물이 흘러 버렸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되어 간다. 나의 엄지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당분간 통증을 동반한 생활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매일 테이핑을 다시 하고, 보호대를 차고. 생각 없이 움직이다 통증에 울고. 시류를 거스르지 않고 앓아야 할 통증을 고스란히 앓고 가는 사람의 역할을 다 하면서. 그래도 다행인 건 이제는 아프면 바로 병원을 찾는다. 통증의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참지 않고 약도 먹고, 적절한 치료도 받는다. 늘 앓기만 하고 약 말고, 울음만 삼키던 어른으로 살았는데 이제라도 아프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어 봐야지. 무엇이든 좀 덜 하고, 참는 것도 좀 덜 하면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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