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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y 07. 2020

울음을 참는 얼굴이 된다

종종 꿈에서 운다. 꿈속에서 울다가 침대 위 내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다. 그럴 때면 나는 화가 나거나 몸이 묶여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답답한 마음으로 소리를 낸다. 나는 펑펑 울었는데 누군가에게 그 울음은 그저 힘주어 내는 신음 정도로 들린다. 나의 앓는 소리는 고작 작은 소리가 된다. 그렇게 깨어나는 밤, 새벽, 아침이면 나는 여지없이 묻는다.


“나, 울었어?”


내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울음소리보다는 고작 '작은 소리'라는 말. 내 안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는 밖으로 새지 않았다.


‘나, 많이 울었어. 이렇게나 아팠어. 꿈에서 조차 너무 아파서 울 수밖에 없었어.’


결국 말은 삼킨다. 모든 말을 뱉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더욱 잘 안다. 내가 밖으로 꺼내는 것은 말이 되면 안 되며, 울음이 되어서도 안된다. 많이 울면 웃지 않는 사람이 됐다. 말을 하면 불편한 사람이 됐다. 나는 그렇게나 슬프고 속상했지만, 내 울음과 말이 누군가에게는 결국 푸념으로만 남았다. 불편한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전염됐다. 병균처럼. 그래서 상하고 아픈 것들이 내 안에서 곪아 터질 때까지 참았다.


아주 뜨거운 여름. 보고 싶었던 바닷가에 갔다. 설레었고, 행복했다. 일주일을 바다가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다. 바다에서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좋을 때, 아프고 싶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찾아올 수 있는 통증 정도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참았으니까. 이렇게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아팠지만 웃고 싶었다. 웃어 주고 싶었다. 누구 앞에서보다 환하게 웃을 수 있게 하는 이. 그 모습을 주고 싶은 이에게. 하지만 힘들고 아픈 것은 티가 난다.  


일주일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통증도 함께. 혼자 남은 집에서 바닥을 기고, 침대를 뒤척이며 소리 내 울어도 고통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 옷과 침대가 다 젖었다. 혼자 택시를 탔고, 병원으로 갔다. 맹장이라고 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염증 덩어리. 응급실에 누워 내 보호자를 기다렸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사람을. 내가 기다리고 있던 곳은 차갑고, 무서운 곳. 겨우 맹장 수술을 하러 들어가면서도 겁이 났다. 너무 아파서,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이 자꾸 흐릿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무서웠다.


수술 후, 괜찮냐고 물어오는 목소리에 울면서 말했다.


"아파요. 너무 아파요. 아파요."


낯 모르는 누군가에게 아이처럼 울면서 말했다. 그 차가운 곳에서 자꾸 울었다. 깨어나니 말라버린 물기가 눈가에 묻어있었다. 병실에서는 울지 않았다. 고작 맹장이었고, 다들 그렇게 아프니까. 그런데 여전히 아픈데, 나는 피부마저 잘 아물지 않아 시간이 더 필요한데. 상처가 덧나는데 울고 있으면 난 늘 아픈 사람이 되고, 행복할 때도 웃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그냥 안아주고, 옆에 있어주면 좋았는데. 내가 울어도, 투정 부려도 괜찮다 말해주면 됐는데. 자꾸 싫은 얼굴이 되면 나는 울음을 참는 얼굴이 된다. 돌아서는 이의 옷깃도 잡지 못하고 주저 않는 아이 얼굴이 된다. 계속 잃어버릴까, 미움받을까 발을 동동거린다. 불안에 눈이 멀어 좋은 걸 놓치는 바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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