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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y 17. 2020

매일 전화해

거리는 멀어져도 서로가 눈에 선하다

붉은팥과 매운 고춧가루, 그리고 굵은소금을 1:1:1의 비율로 섞어 방 곳곳에 놓아두라고 당부하셨다. ‬씩씩하게 대답하고 돌아왔다. 그의 염려는 모두 나를 향한 마음이다. 내가 그렇게라도 하면 멀리 가면서 조금이라도 안심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미신이라도.


"울애기, 엄마한테 매일 전화해."


60이 넘은 엄마는 30을 넘은 나를 애기라고 부른다. 엄마는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늘 나보다 작았다. 그래도 나를 안아주면 항상 그가 크게 느껴졌다. 매일 전화하라고 말하는 그를 내가 안아주었다. 어깨도 작고, 너무도 작은 사람이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보는 그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매일 할게. 매일 전화할게."


이렇게 멀리 떨어져 본 것이 처음이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기차로 1시간이면 충분히 만나러 갈 수 있는 곳에 살 테지만.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서 멀리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매일 함께 있어도 먼 사이였다. 그는 항상 먹고사는 게 버거웠다. 두 딸을 데리고 홀로 사는 생활은 늘 위태로웠다. 매일 아팠고,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계를 꾸리는 것뿐. 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둘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그가 살면서 늘 소홀하지 않으려 한 것이 있었다. 바로 우리를 배부르고, 맛있게 먹이는 일. 자신이 번 돈과 그가 가진 모든 여유를 철마다 과일을 사고, 좋아하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이는데 썼다. 물론 살림살이보다 과한 음식들은 먹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만들고, 사주는 음식들은 다 맛있었다.


멀리 가는 나를 위해 그는 반찬을 만들었다. 종류별 김치와 내가 좋아하는 밑반찬. 우리 집 냉장고에는 이미 엄마표 김치와 음식들로 가득한데. 늘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되는 마음들이 꽉꽉 들어차 있는데. 언제쯤 우리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편히 사실 수 있을까. 내가 엄마처럼 60이 넘어도 그는 나의 끼니를 걱정할 거다. 그날이 와도 나를 애기라고 불러줄 거다. 매일 두 딸 생각에 애 끓이며 발을 동동거리며 사는 그의 오늘이 그려진다. 거리는 멀어져도 서로가 눈에 선하다.


"엄마가 먼저 하기 전에 내가 전화했어, 오늘은."


수화기 너머에서 그가 크게 웃었다. 고작 전화 한 통에. 간단한 안부를 전하고, 냉장고 속 김치와 반찬으로 밥을 맛있게 먹었다 했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 말고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물론 나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없는 딸이다. 우리는 멀기도 하지만 또 너무도 가까워 늘 서로가 애달픈 사이다.


"울애기, 밥 잘 챙겨 먹어."

"응,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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