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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Sep 21. 2020

음파, 음파, 음~파

내일까지 갈 여유

수영을 좋아한다. 이십 대 후반에 수영을 수영답게 하고 싶어 강습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 퇴근 후 수영장을 찾았다. 강습으로 두 가지 정도의 영법이 가능해진 후, 수영장에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없었다는 말로 내 의지가 부족했음을 대신할 수 있겠다. 그렇게 수영을 조금 배우고, 강습을 다니지 않을 때면 종종 자유수영을 다녔다. 내가 할 수 있는 두 가지를 그나마도 까먹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수영이 좋았다. 물속에 있을 때면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 그리고 시력도 나쁜데 수경에는 도수를 넣지 않기로 했다. 비용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굳이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고 싶지 않았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방향과 나의 위치 정도만 파악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작고 사소한 것까지 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흐릿하게 보면 남들도 흐릿하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과 수영장에 갈 때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을 그런 식으로 가렸다. 물에서는 서로의 머리 정도만 볼 수 있으니까. 물속에서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앞사람의 발 정도만 볼 수 있으면 되니까.


주말 오전, 종종 자유수영을 위해 버스를 타고 수영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큰 창 옆의 레인에서 자유수영을 할 수 있었다. 두 개의 레인을 제외하면 아쿠아로빅을 하시는 '언니'들로 가득했다. 수영장을 가득 채우는 음악과 강사의 구령. 그리고 '언니'들의 흥겨운 추임새가 울려 퍼지는 아침이다.


홀로 끝과 끝을 오가며 수영을 한다. 수경을 쓰면 물속에서 눈을 뜰 수 있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물속에서 반짝인다. 일렁이는 빛을 보면서 앞으로 가면 내 위치도 방향도 잊혔다. 시력이 좋지 않아도 환한 그 빛이 물속에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수도 헤아리지 않고 오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온몸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면 내 몸의 무게가 온전히 느껴진다. 평소라면 느껴지지 않을 무게감. 물속에서 그렇게나 가뿐하던 팔다리가 땅으로 꺼질 듯하다. 터벅터벅 걸어서 흥겨운 아쿠아로빅 음악과 강사님의 구령, 그리고 언니들의 큰 웃음과 가뿐한 몸짓을 지나친다.


수영장을 채우고도 남을 소리를 지나면 샤워기에서 흐르는 물소리만 들린다. 수영을 하며 땀을 흘리지는 않지만 더 많은 것을 물로 씻어내고 밖으로 나와 다시 버스를 탔다. 주말 아침, 수영을 하는 일과를 마치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여전히 눈 앞에 남아있었지만, 다시 내일로 뛰어들 힘이 생긴 것만 같았다.


음파, 음파, 음~파


수영을 하면 숨을 잘 쉬기 위해 신경을 쓰며 팔을 젓고, 발차기를 한다. 기억할 필요 없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 수영을 할 때에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머리는 숨을 쉬고, 팔로 물을 가르고, 발을 차는 방법을 궁리하느라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사라진다. 조금씩 새어나가는 숨을 따라 천천히 비워지는 머리. 그렇게 다시 내일까지 갈 여유를 얻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수영을 하지 않는다. 다른 운동을 하고 있지만 수영을 할 때처럼 내 숨과 몸에 집중하지 못한다. 수영이 하고 싶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물을 가르고 차면서 앞으로 가고 싶다. 숨을 내쉬며 몽땅 다 뱉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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