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 중년
중년이라니요. 어떻게 이런 글감을 선택할 수 있죠? 되묻고 싶다. 메일을 읽으며 더~어ㄹ컹 뭔가가 내려앉았다. 아무도 모르는데 모니터 너머의 모두가 그런 나를 알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정해주세요. 이 단어는 쓸 수 없어요. 쓰고 싶지 않아요.’
생각과 동시에 ‘중년’을 검색한다.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 사람의 일생에서 중기, 곧 장년, 중년의 시절을 이르는 말이라 나온다.(네이버에서 검색했다. 어디에서 검색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결과.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마흔 살 안팎의 나이. 시선이 머문다. 내 숫자를 떠올려 본다. 이번에는 쿵! 아무래도 여기저기에서 주저앉고 있다. 뭐가? 뭐가 이렇게 위태로운 거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저 단어 하나인데. 혼자서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나만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아닐까? 분명 아무도 모를 텐데(이제 짐작하는 사람은 있겠지). 내 숫자를 세어 보다가 엄마가 떠오른다. 지금은 50대까지 포함하는 중년을 벗어난 그의 숫자.
곧, 엄마의 생신이다. 환갑. 61세에 맞이하는 만 60세의 생일. 옛날에는 환갑이 되면 잔치를 열어 동네방네 시끄럽도록 축하를 했다지. 요즘은 이 숫자가 전처럼 큰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엄마는 달랐다. 올 생신에는 그의 형제, 자매와 함께 식사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로 다시 소란스러워진 도시에서 이제는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가족들을 한 자리에 부르기가 걱정된다 하신다.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아쉬움이 묻어 있다. 시. 끌. 뻑. 쩍. 찌. 근. 하도록 축하를 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이십오, 내 숫자에 25를 더하면 그의 나이가 된다. 그런데 왜 그는 61년생일까. 그의 주민등록번호를 세어본다. 육일---- -------. 이상하다.
“엄마, 왜 61년생이야?”
전화를 걸었다. 답은 너무 간단했다.
“할아버지가 1년 늦게 신고를 했어. 그래서 엄마는 9살에 학교에 갔잖아.”
“그래? 왜 그렇게 하셨어?”
“옛날에는 죽는 사람이 많았어. 그래서 엄마처럼 늦게 학교 가는 사람들도 많았어.”
많았다. 죽는 사람이 많았다. 태어나 1년을 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작은 세상.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백일을 살았다고 잔치를 하고, 1년을 채워 살면 돌잔치를 벌인다. 아기는 태어나 1년을 보내고 나서야 나이를 먹었다. 살아남은 이를 축하하는 자리. 이런 이야기는 정말 먼 옛날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61년을 살아오신 엄마가 태어났을 때도 1년도 살지 못한 아가들이 있었구나. 그래서 엄마는 1960년에 태어나 1961년이 되어 세상에 이름을 올렸구나.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이 두려웠던 세상도 있었겠구나……. 그때, 엄마가 나를 불렀다.
“울 애기 뭐 해?”
“나, 잠깐 카페 나왔다가 이제 집에 들어가.”
“엄마는 뭐 해?”
“종량이 아줌마랑 금빵왔어.”
금방 : 금은을 가공하거나 사고파는 가게이지만 엄마는 금빵*이라 말씀하신다.
“엄마, 왜 이리 금붙이를 좋아해.”
곧, 엄마의 생신이다. ‘출생의 비밀이 궁금해도 참을걸’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우리 엄마구나 싶은 말이 들려왔다.
“엄마, 반지 하나 사줘.”
엄마는 나를 애기라 부르신다. 그리고 지금 나는 돈벌이는 하지 않는 백.수.다.
“엄마, 지금 백수한테 반지 사달라고 하는 거야?”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엄마가 웃는다. 그리고 정확하게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엄마, 반지 하나 사줘.”
“내 생일에 어떻게 하실라 그래? 내 생일 먼저야.”
“알지, 울 애기 생일에 뭐 사줄까?”
이제 방법이 없다. 1960년, 분동에서 태어난 김 씨네 말괄량이 막내딸은 반지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금빵 사장님과 통화하면서 계좌번호를 받아 적었다. 엄마의 환갑을 기념하는 선물을 사 드렸다. 무선상으로. 꼭 맞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사람들에게 자랑할 그의 모습이 훤하다. 다행이다. 내 퇴직금이 금붙이 살 여유가 될 만큼 남아 있어서. 그의 61세 생일을 함께 축하할 수 있어서.
글을 쓰려다 돈을 썼다. 그래도 그 덕에 엄마와 크게 웃었다. 중년이 되어도, 장년, 노년이 되어도 어쩌면 나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내 나이가 지금 엄마 나이가 되어도 같이 웃으면서 엄마와 애기로 남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중년이라니요. 끔찍하긴 하다.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