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기 나름_나의 뒷배에게

글 감 : 첫눈

by 운오

“나, 태어났을 때 어땠어?”


장마철,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내가 태어났던 날은 비가 아주 많이 내렸다. 체구가 작은 엄마는 아무리 힘을 주어도 3kg도 되지 않는 아기를 몸 밖으로 쉬이 밀어내지 못했다. 나를 가졌을 때 잘 먹지를 못해, 아기도 엄마도 작고 힘이 없었다고.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지. 엄마는 기억도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를 낳은 달이 가까워지면 장마가 시작되면 온몸이 ‘들썩들썩’하다 하신다.


태어난 아기가 작아서, 너무도 작아서 하마터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뻔했다고. 다행히 그렇게 작아도 밖에서 살 힘은 가지고 태어났었나 보다. 인큐베이터에서 살지 않고 집으로 온 아기는 어지간히도 주접을 떨었다고 한다. 자주 아프고, 약하고. 그래서 밤이면 아기를 품에 안고 그렇게 문지방을 넘었다고. 문지방을 넘으며 얼마나 많은 말과 눈물을 삼켰을까.


자라며 내가 삼키기 힘들어서 뱉은 말들은 다 아팠다.


‘힘들어, 아파, 짜증 나, 싫어.’


어떤 날에는 말도 없이 울었다. 그런 날이면 엄마와 나는 서로 말이 없었다. 여전히 어린 엄마는 울면서 크는 아이와 어떤 말을 나누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 말하지 않고 지나온 순간과 보이지 않으려 감춘 눈물이 점점 늘어났다.


“그때는 아무리 돈이 없어도 가방에 3, 40만 원씩 넣고 다녔어. 언제 너네가 아플지 모르고, 무슨 일이 생길까 겁나서. 어떻게든 그만큼씩 갖고 다녔어.”


작고 어린 엄마는 두 아이를 집에 두고 일을 다니며, 가방에 든 돈으로 불안을 달랬을까. 행여 다칠까, 혹여 아플까. 우는 아이를 달래 줄 방법을 모르고, 사는 것에만 눈을 밝혀야 했던 삭막한 시절이었다. 아기가 자라 엄마보다 커졌을 때에야, 늘어놓게 되는 옛날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려주던 엄마는 목이 메었다. 웃으며 말하지만 차마 하지 못할 말과 꾸역꾸역 삼키는 눈물이, 목으로 가슴으로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계절이 변하는 것도, 나이가 드는 것도 잊은 채 살았다. 비가 내리고, 눈이 오면 한 계절을 나는 것이 벅차다 생각하며. 어린 딸도 그런 엄마의 버거움을 이고 자랐다. 그 탓일까. 어린이로 살 줄 모르고, 어른으로 살아야 한다고 익히며 자라 버린 나는 여전히 그 버거움을 이고 산다. 늘 버거움에 지고 산다.


어려서 주접을 떨던 아기가 커서도 여전해, 엄마는 아직도 밤이면 홀로 문지방을 넘는다. 창을 열고, 닫고. TV를 켜고, 끄고. 매일 하는 안부 전화로 여전히 작고, 약한 아기가 하루는 잘 보냈는지. 오늘은 웃는지. 혹시 아프지는 않을지.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너무 많은 마음을 담은 통화로 여전히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사람. 매일 나의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산다.


겨울이었다. 첫눈을 기다리지 않던 겨울. 모든 계절을 의미 없이 지나던 해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힘들다고, 아프다고. 살고 싶지 않다는 말만 빼고 모든 말을 다 한 것 같은 밤에,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말했다.


“너무 힘들 때는 엄마 생각하며 살아줘. 엄마는 너희 생각하며 살았어.”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눴다. 너무 힘들 때는 자신을 생각하며 살아달라는 말에, 내 삶에 그의 모습이 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속을 다 들킨 것 같아 울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밤을 보냈다. 몰라도 엄마도 그렇게 울면서 밤을 보냈을 거다. 엄마와 장난스레 하는 말마냥, 좋은 것 빼고 나쁜 것만 빼다 박은 딸이라 눈물 많은 것도 닮았으니.


모든 계절이 의미 없던 해. 더는 첫눈을 기다리지 않던 겨울. 봄을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열심히’를 멈추었다. 그런데 스스로 느긋하게 살아보자고, 종종걸음을 걷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신을 몰아붙이는 나를 본다. 경험한 적 없다고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 텐데. 느긋하게 걸어본 적 없어 어떤 걸음으로 걸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저렇게 걸으면 좀 여유 있을까.’

‘이렇게 고개를 살짝 돌리고 앉아 있으면 편해 보일까.’


아무리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아도 어떤 모양이 되어야 불안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가방에 돈을 넣고 밤으로 낮으로 달리던 엄마처럼, 필요도 없는 짐을 가방에 욱여넣고 달리는 나는, 내 불안을 짊어지고 다녔다. 지금도 가방에 계속 넣고, 넣고, 넣는다. 비우지 못한 짐들이 한가득이다.


‘잘 지내죠?’

‘네, 잘 지내요. 매일 엎치락뒤치락하지만요.’

‘그건 저도 그래요.’


늦은 밤, 함께 일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이 가까워진 시간에 수플레 팬케이크를 구웠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주고받은 친구의 소식에 SNS에서 본 사진 속 봉투에 적힌 문구가 생각나 말해 주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같은 가방에 들어 있다고 했어요.’

‘ㅎㅎ 꺼내기 나름’


그 생각은 못 했다. 꺼내기 나름이구나. 내가 욱여넣은 것 중에 있을지 모를 좋은 것을 꺼내면 되는걸. 나는 왜, 계속 불안만이 가방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가방 속 돈이 엄마에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을지 모르는데. 문지방을 넘게 해 줄 힘이 내게도 있을 텐데. 인큐베이터 말고, 밖에서 살 힘이 분명 가방 안에 있지 않을까. 꺼내기 나름이니까. 가방을 좀 뒤적여 보자. 고작 여름이니까. 겨울 오기 전에 발견할지 모른다.


“힘들면, 엄마한테 다 말해. 누구한테 해, 엄마한테 해야지.”


가방 속에서 좋은 것을 꺼내어 주고 싶다.

이 글은 엄마께 보여 드리지 못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


이전 03화“영차, 여~엉차… 안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