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고래 소리쳐도 된다고

글 감 : 말 썽

by 운오

동생 집에는 이제 한 살 된 강아지가 산다. 그의 이름은 ‘보니’. 올해 아홉 살 된 조카가 지은 이름이다. 아홉 살 조카는 나보다 유튜브를 많이 보고, 내가 모르는 온라인 용어를 사용한다. 처음 강아지 이름을 들었을 때, ‘본’이라고 듣고 지금까지 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물어보니 ‘보니’라고 한다. 동생 말에 따르면 ‘보니, 하니’의 ‘보니’라고. 한 살배기 말썽꾸러기 ‘보니(보니는 수컷이다. ‘보니 하니’의 보니도 남자아이였다.)’.


“야, 야~야야야야! 안돼! 하지 마! 거기 아니야.”


너머로 동생의 목소리가 커진다. 이제 통화는 글렀구나 싶다. 더는 내 말이 동생 귀에 들어갈 리 없다. 몇 번을 불러보아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언니, 잠깐만.. 안 되겠다.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보니야~!!”


짧은 통화의 끝은 거의 비슷하다. 전에는 조카들의 이름이 동생의 말끝에 있었지만, 요즘은 9할 이상을 보니가 차지한다. 이제 갓 한 살이 된, 막내 보니.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옆에 누워서 자는 우리 집 강아지를 바라본다. 올해로 열여섯 살이 되었다.


이불에 구멍을 내고, 휴지를 물어뜯어 방을 엉망으로 만들고, 벽과 장판을 벅벅 긁어 상처를 냈다. 작은 소리에도 오래 짖고, 가족들이 누워 있으면 그 옆을 토끼라도 된 듯 펄쩍펄쩍 뛰었다. 산책을 나가면 지치지 않고 달렸다. 가족들 발소리가 들리면 잠들어 있다가도 일어나 문 앞으로 달렸다.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고무줄을 가지고 하는 놀이였다. 고무줄을 입에 물고, 앞발로 당기고 던지고 뛰듯이 다시 잎에 물기를 반복했다. 우리 집 강아지가 어렸을 때는 그랬다. 지금은 주로 누워 있다. 조금 놀다가 지치면 혼자 침대 위로 올라간다. 가까이 다가가 등과 엉덩이를 쓰다듬으면 몸을 돌려 귀찮다는 듯 떨어져 눕는다. 올해로 열여섯 살이 되었다. 보니처럼 수없이 이름 불리던 시간이 있었다.


아직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마당 있는 집에 살던 때. 집의 현관은 나무로 된 문으로 큰 유리창이 있었다. 한동안은 그 문에 유리 없이 틀만 남아 있어, 굳이 문을 열지 않고도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온 동네 사람이 지나가며 거실에 누가 있는지, 무얼 하는지 다 볼 수 있었다. 유치원 다니는 큰아이가 돌멩이를 던져서 유리를 깬 덕이었다. 전자레인지에 우유 팩을 넣고 돌려 부엌이 온통 우윳빛이 되기도 했고, 엄마는 선생님 전화를 받고 유치원에도 오셨다. 아이는 도망가고, 엄마는 쫓아가는 일상. 마당을 다 뛰어보지도 못하고 엄마에게 뒷덜미를 잡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반복되는 시간. 셀 수 없이 이름 불리던 시간.


“넌 왜 그렇게 쓸데없는 질문이 많아.”


중학교 1학년. 열네 살, 반 친구들의 눈이 한 곳으로 향한 것 같았다. 심지어 나조차 나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있는 듯한 순간. 더운 여름, 몸이 차갑게 식었다. 나의 질문은 쓸 데가 없었다. 내가 묻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이었을까. 질문하면 안 되는 것인가. 왜 물어보면 안 될까. 내가 누굴 불편하게 하는 걸까. 어깨가 굽은 채로 자란 나의 어깨는 더 동그랗게 안으로 안으로 말렸다. 내 이름이 싫어졌다. 고작 열네 살이었다.


나는 네가 “선생님, 우리 노트 언제 줘요?”라고 물어봐 줘서 참 고마웠다.


열일곱. 지금도 얼굴과 이름이 선명한 선생님이 노트(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과 교환 노트를 매주 주고받았다. 무엇이든 적을 수 있는 노트였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속내를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적어 주신 글이다. 아마 선생님의 나이가 서른이 못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적은 시답잖은 말과 끼적거린 낙서에도 꼭 한 마디를 남겨 주었던 사람. 지나가는 말(지나듯 말해도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는 말)에도 대답해 주던 사람이었다. 내가 묻는 말에 답을 찾아 주려 노력하던 사람, 답이 없는 질문에는 스스로 답을 찾도록 격려해주던 사람. 그 해에는 내가 열일곱으로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나이쯤 되었을 때, 나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말이 질문이고,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는 단어들이 소용이 없어지는 나이의 학생들. ‘질문’이라는 단어조차 설명이 필요한 나이. 나의 학생들은 동생 집에 있는 보니처럼 이제 막,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나이를 살고 있었다.


쉬지 않고 내 이름을 불렀다. 나도 끊임없이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교실에서 그리고 집에서 이름이 많이 불리는 아이들은 말썽꾸러기로 불렸다. 2019년에는 열 명의 말썽꾸러기와 치열하게 보냈다. 정말 모두가 말썽꾸러기였을까.


같은 말을 매일 반복하고, 설명하고. 혹여 꾸중이라도 하는 날에는 스스로가 너무 창피했다. 겨우 다섯, 여섯, 일곱 살의 아이들이 내가 아는 것을 알 리가 없음에도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부끄러웠다. 알 수 없는 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매일 잊어버렸다.


저마다의 이름이 있는 아이들과 함께 졸업했다.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일곱 살 아이들이 일곱 살로 보이던 때였다. 궁금하고 모르는 것을 서슴없이 묻고, 아프다고 울고, 좋아서 웃고. 쉬지 않고 달리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춰 서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물론 많이 힘들었다. 나는 내 나이로 살아야 했으니까.


조카는 아홉 살이다. 가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말을 할 때면 놀라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가 아홉의 나이를 살기 바란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늘 내 나이보다 많은 나이를 살았다. 몰라도 묻지 못했고, 아파도 참고, 슬퍼도 소리 내 울지 않았다. 이제 와 그런 시간이 아쉽고, 후회가 된다. 남들이 어른이라고 말하는 시기가 되면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고, 아픈 것도 참아가며 웃어야 하고,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는데(나는 참고 참고 또 참는 캔디가 차암 싫다).


나이를 더하고 더해도 매일 모르고, 어려운 일 투성인데. 모를 때에는 모른다고 말하고 그 나이로 살면 좋겠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꼭 많이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고래고래 소리쳐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보니는 한 살로 살고, 나도 2020년의 내 나이로만 살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고, 알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은 하나씩 해보고. 힘들면 참지 말고. 외롭고 슬프면 펑펑 울면서.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

이전 04화꺼내기 나름_나의 뒷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