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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별했다

글 감 : 무 릎

by 운오

눈이 건물보다 높이 쌓이는 곳. 쌓인 눈을 뚫고 들어가면 그대로 내가 사라질 것 같은 곳. 이십 대의 내가 가고 싶던 곳을 삼십 대가 되어 찾았다. 가기 전부터 우여와 곡절이 많은 여행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면서부터 울었다. 어떻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서 숙소까지 갔을까. 아주 길고, 짧은 일주일을 보냈다. 순간이 마지막처럼 아렸다. 얼굴에 짓는 웃음마다 울음이 배었다.


차를 타고 달리는 내내 보이는 것은 눈뿐이었다. 그렇게 보고 싶던 많은 눈을 계속 볼 수 있었다. 여름에 태어난 나는 겨울을 바라는 아이였다. 뜨거운 여름보다 차가운 겨울이 좋았다. 겨울에나 느낄 수 있는 차게 아린 바람과 습기를 머금지 않은 공기. 찬 바람에 볼이 붉게 변하고, 살갗이 살짝 아린 느낌을 좋아한다. 두 손을 비벼 차가운 두 볼에 얹기를 좋아한다.


북해도의 눈은 전혀 차갑지 않았다. 하얗고, 높게 반짝였다. 경험하지 못할 추위를 기대했지만, 추위보다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곳이었다. 그 눈을 바라보며 울었다. 늘 가고 싶던 곳에 도착했지만 울지 않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바람이 많으면 내가 흘리는 눈물이 다 날아가 버릴까 싶지만, 바람도 불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창밖만 바라보았다.


서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노래만 들었다. 여행 전부터 여행을 위해 쌓아 둔 플레이 리스트를 듣고, 또 들으며 달렸다.


나 지친 것 같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아.

그대 있는 곳에 돌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면 좋겠어.


아이유 / 무릎


아무리 달려도 닿을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에 앉아 있지만, 결코 닿지 않을 사람 같았다. 우리가 나누었던 모든 말과 마음이 저 깊고 많은 눈 속에 파묻혔다. 쌓인 눈을 아무리 파헤쳐도 지름길은 없었다. 서로에게 주었던 많은 것들은 더는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겨울바람이 되어 스쳤다.


일주일이 지나 다시 내가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눈의 나라에서 보낸 시간이 마치 꿈처럼 길게도, 짧게도 느껴져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깨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긴 꿈을 꾸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무거워 일으켜지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그 깊은 잠에서 깨우지 않았으면 했다.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모든 것이 다 꿈처럼 사라질 것 같아서.


여행하며 열심히 찍었던 사진은 모두 흐렸다. 형체를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어둡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처럼 아득했다.


나는 이별했다. 긴 겨울을 지나와 차가운 볼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있다. 아무리 두 손을 비벼도 볼이 아리다. 아무리 머리칼을 넘겨도 잠들지 않는 긴 밤이다.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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