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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 번은 성공해 봐요

글 감 : 단 추

by 운오

“왜 이렇게 다 엉망이야."


가방 속처럼 나도, 그리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엉망이었다. 가방에 아무리 손을 넣어 뒤져도 방금 넣은 차 키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걸린 키링을 집어 들었지만, 내용물이 다 빠져나와 텅 빈 카드 지갑이었다. 결국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내용물을 땅바닥에 쏟았다.


노트, 필통, 지갑, 책, 카드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던 영수증, 펜(필통도 있는데 펜은 왜 따로 두는지), 테이프.. 엉망인 가방 속에서 쏟아져 나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마스크 아래로 눈물이 흘렀다.


“뭐가 다 이렇게 어려워. 가방까지 엉망이냐구. 종일 가방만 뒤지잖아”


마스크 밖으로 마음이 샜다. 머리 위 가로등이 가방 속 내용물을 환하게 비췄다. 차 키를 집어 문을 잠그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들을 다시 가방에 담았다. 아무렇게나 걸어서 지금 나에게 그나마 마음 편히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이 더없이 아픈 밤이었다. 더는 머물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자꾸 내 살을 도려내고 있는 것처럼 아팠다.


“당신이 행복하면 좋겠어요.”

“너만 생각해.”

“왜 그렇게 미련해.”


지나는 자리마다 놓이는 말들이 많았다. 내게 주는 말들이 나를 세우기도, 나를 누르기도 했다.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데.’

‘내 마음도 내 맘처럼 안 되는데, 뭘 더 어떻게 생각해.’

‘나도 알아, 내가 미련한 거. 그런데 어쩌냐고 힘든걸.’


마음속으로 모든 말에 소리쳤다. 대체 나에게 슬픈 말들을 왜 계속하냐고. 지금 이렇게 슬픈 게 맞는데, 왜 다들 틀렸다고 말하는 걸까. 더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힘들어. 지금 내가 힘들다고.”


“그럼, 내가 너한테 ‘아이고, 힘들구나. 그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해.’ 그렇게 말해주면 되는 거야? 너 힘든 거 나도 알아. 그런데 혼자 그렇게 울고 있는다고 누가 알아주냐고. 그만 좀 울라고. 사람 속 터지게 너 혼자 그렇게 울지 말라고.”


“네가 무슨 말 하는 줄 나도 알아. 왜 그렇게 말하는지도 안다고. 그런데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아픈 거라고. 그 말을 듣는 게 더 힘들어.”


다들 나한테 틀렸다고 말하는 것 같아. 안다고 다 할 수 있으면 힘들지 않겠지.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어렵지도 않고, 다 할 수 있겠지.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이렇게 살다가 결국엔 하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많이 힘들 수밖에 없잖아. 내가 이렇게 생겨 먹었는걸.


아프다고 투정 부리는 애가 되었다. 힘들다고 티를 팍팍 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아프고 힘든 걸 ‘누군가’ 알아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는다. 여전히 기대를 품게 되는 자신이 싫다가도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에 기대지 않으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이를 먹었다고 절로 알게 되는 것은 없다는 걸. 많은 것이 변해도 나는 여전히 느리다는 걸 다시 알게 됐다.


“쉽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살아온 시간의 배가 지나야 괜찮아질지도 몰라요. 그래도 괜찮아질 때는 올 거예요. 그 사이사이 웃는 일도 많을 테고요. 계속 흔들리면서 혼자 서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사는 건.”


친구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도 전화를 걸면 자신의 삶도 고단하지만 내게 마음 건넨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물론 그 순간에 불과하지만. 결국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며, 모든 말들을 지나 오늘에서 내일로 가야 할 사람도. 그래도 너무 힘든 날에는 그 말을 들었던 자리에 머물고 싶다. 오늘에서 내일로 갈 힘도 없고, 이유도 찾지 못하는 날에는.


잠에서 깨어나 씻고,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는다. 옷에 달린 단추를 다 채우고 집 밖으로 나간다. 하루를 다 보내고 나면 조금은 달라질까. 또 기대를 하고. 여전히 엉망인 가방을 들고 걸어가고 있지만, 아무리 뒤져도 못 찾겠으면 다시 쏟아 버려야지.


“그런 식으로 시작한 대화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 한 번은 성공해요. 물론, 이 한 번으로 결정이 바뀌고, 엄청난 변화가 있지는 않겠지만요. 그래도 속에 있는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분명 이후에 본인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우리, 한 번은 성공해 봐요.”


사람들이 내게 준 말들로 마음을 여민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근차근 단추를 채워 나간다. 첫 단추. 아니 매일 단추를 새로 채우는데, 첫 단추를 잘 못 채웠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천천히 밖으로 나가야겠다. 조금 어긋나고,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더라도. 매일 작게 성공하면서.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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