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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든 다 하겠는데?

글 감 : 영 양 제

by 운오

“나는 다 했어. 이제 더는 힘이 없어. 앞으로 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냥 여기에서 다 끝나면 좋겠어.”


울었다. 몸에 남은 수분이 다 눈물로 빠져나가고 있는 걸까. 그렇게 울어도 아직 흐를 눈물이, 마음이 남았다는 것에 또 놀랐다. 아침마다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나에게 웃음을 짓는 얼굴들을 마주할 때마다 더 힘이 들었다. 왜 나에게 그런 표정을 짓고, 그렇게 따듯한 마음을 주려고 하는지. 더는 무엇도 채우고 싶지도, 남기고 싶지도 않다.


왜 쓰고 있을까. 더는 속에 담고 싶지 않아서 쓴다. 누가 읽고 싶어나 할까. 그런데 나는 쓰지 않고서는 온갖 생각과 마음에 매몰된 채로 허우적거리고, 더 깊이 가라앉기만 한다. 저 바닥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나의 발목을 쥐고 놓아줄 생각이 없다. 저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그들이 내게 기꺼이 내미는 손이 잡히지 않는다. 더 뻗어서 그 손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 힘이 없다.


“밥 먹었어?”

“먹고 싶은 거 먹어요”

“언니, 이 화장품 좋아. 언니도 이거 써 봐.”

“우리 같이 신나게 놀아요.”

“아빠한테 다녀 가. 너한테 줄 거 있어.”


내 투정을 다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돌아보니 다들 나를 보고 있었다. 끼니를 걱정하고, 함께 보낼 시간을 기대해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나의 노력을 기꺼이 지켜봐 줄 사람들.


“스스로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무어라 말하고 싶을까. 나는 나에게.


“잘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열심히 했네.”


스스로에게 잘 해왔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다시 울었다. 어쩜 이리도 눈물이 많을까. 우리 가족 중 나는 자주 울었다. 화가 나도 울고, 슬퍼도 울고, 좋아도 울었다. 우는 방법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걸까. 아주 작은 마음에도 크게 울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생각했다. 울지 않고 웃었으면 어땠을까. 안아주었으면. 말해주었다면. 결국 내게 남는 것은 또 다른 후회였다. 이랬다면, 저랬다면, 그랬었더라면.


“이제 그만 하려고요.”

“축하해요. 웃으면서 살아요, 우리.”


여전히 앞에 놓인 많은 시간이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웃고, 떠든다. 고마운 마음을 전해준 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나누고, 고마운 말을 전하고, 함께 소리 내어 웃고.


“요즘 얼굴에 활기가 생겼어요.”


서울에서 사귄 친구가 내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많이 웃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래 지고 있던 커다란 마음과 기대, 오해를 내려놓아서 일까. 최근에는 오래도록 연락을 하지 않고, 만나지 않았던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나의 아빠.


내 기억 속 아빠는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외면하고 싶었던 존재였다. 어린 나는 그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너무 오래 오해의 기억을 쌓은 채 살았다. 미워하는 마음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너희 아빠 그런 사람 아니야. 엄마가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엄마에게는 나쁜 사람이었지만, 너희들은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이야.”


충격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아는 것이 아니라 오해였다는 말. 엄마가 그동안 아빠에 대해 했던 모든 말들이 사실이었다는 것.


“아빠….”


소리 내 아빠를 부르자 아빠의 무등을 타던 아이가 되었다. 아빠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호곡장이 필요했다. 글로는 낼 수 없는 큰 울음소리를 낼 자리가. 나의 아빠가 그리고 나의 엄마가 나의 호곡장이 되어 주었다. 기꺼이.)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어떤 말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화해를 하거나, 아빠를 용서한 것이라 말하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저 나의 오해로 쌓은 온갖 미움의 감정들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내가 아끼고 아꼈던 그와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와 함께하며 어린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런 아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사랑해.”


얼마나 그 말이 하고 싶었을까. 전화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사랑한다고 했다. 나를 사랑한다고. 내가 쏟아낸 그 모든 아픈 말들을 다 듣고, 그는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아주 오래 걸렸다. 서로 그 말을 주고받기까지.


커다란 짐을 내려놓으니 내가 볼 수 없던 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봐 주는 좋은 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큰 울음소리에 묻혀있던 마음과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웃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몰랐다. 내가 잘 웃는 사람인지도.


오늘도 많은 마음과 말들을 꿀떡꿀떡 삼킨다. 인복과 먹을 복은 세트다. 좋은 사람들이 옆에서 계속 밥을 떠먹여 준다고.


목소리에 힘이 느껴져요

선생님이 잘해서 아이들도 잘하는 거예요.

요즘 예뻐진 것 같아요

더는 상처 받지 말아요

얼른 만나서 놀자

사랑해


아, 뭐든 다 하겠는데?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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