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감 : 명 령
타투를 했다. 적어둔 버킷 리스트는 없는데 살면서 하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늘 미루는 것이 먼저여서 이룬 것이 적은 나는 2020년 10월 21일에 타투를 했다. 자신을 위한 문장이 정해지면 꼭 하고 싶던 자리에.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새겼다. 사실 이전부터 필요한 문장이었지만 실천하지 않는.
목록이 있었다. 인생의 문장, 혹은 오늘의 문장으로 머리와 마음에 고이 새겨 두었던 문장의 목록. 언젠가 ‘운오’라는 이름으로 또 책을 만들고 싶을 때 제목으로 삼고 싶었던. 손목에 새긴 문장은 그 리스트에서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나온 모든 시간과 앞으로 만날 시간에 누구보다 나에게 필요한 문장이었다.
“많이 아플까요?”
디자인을 고르며 물었다. 상대방은 앞을 보고, 내가 고른 디자인을 프린트하면서 답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아픈 거 잘 참으세요?”
“네, 저 잘 참아요.”
말하고 웃었다. 잘 참는다. 울음은 참지 못하지만 아픈 것은 잘 참는다. 통증이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익숙해지지도 않지만 참고, 버티는 것이 익숙하다. ‘존버’가 답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느새 가장 잘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가장 쉽게 찾는 답이 되었다.
“긴장되세요?”
타투이스트가 물었고, 솔직하게 답했다. 긴장보다는 흥분에 가까웠다.
‘드디어, 하는구나!’
“아니요. 긴장되지 않아요.”
“다들, 많이 아플까 봐 긴장하고 걱정하시거든요.”
아플까 긴장하고, 걱정하는 일.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누워 왼 팔을 타투이스트에게 내밀고 천장만 바라봤다. 가끔 입술을 꾹 다물었다. 큰 통증은 없었다. 짧은 문장이고, 글씨체도 얇아서 아플 게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입술을 다물었다.
“끝났습니다.”
짧은 시간. 오래 미루던 일을 끝내는 시간은 참 짧았다. 이렇게 빠르게 끝날 수 있나 싶을 만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도 없었다. 아, 이렇게나 간단한 일을 왜 미루기만 했을까.
“관리가 중요해요. 격한 운동과 음주는 하지 마세요. 일주일 후에는 밴드를 떼고, 전용 연고를 얇게 수시로 발라주세요.”
화상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열이 오르는 활동을 삼가야 한다고. 운동도 하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몸에는 계속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목과 온 머리가 열기로 가득했다. 잠들기 어려운 매일, 밤에는 꿈도 여럿 꾸었다. 어둠이 길어졌지만 깨어 있는 시간은 계속 빨라졌다.
타투를 했다. 지울 수 없는(물론 원하면 지울 수 있겠지만) 문장을 내게 새겼다. 뚜껑을 열고 연고를 같은 자리에 얇게 바른다. 손가락에 닿는 감각으로 속으로 문장을 읽는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사람 같아요.”
어떤 친구는 내게 말했다. 음,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결국 머리에서 몸으로 신호를 보내는 거 아닌가. 아, 뇌와는 다르지. 생각한다.
슬프면 몸에서 슬픔이 뿜어져 나온다. 기쁘면 기쁨이. 행복하면 세상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물론 불행해도 마찬가지이다. 감정, 마음, 정신이 몸을 지배하고 모든 것의 시작점이 한 점에서 비롯된다. 친구의 말을 듣다가 아, 그렇구나. 격한 끄덕임을 하고 있는 나의 정신을 발견한다.
마음이 동하면, 작은 행동에도 나의 온 마음이 서린다. 그런 사람이라 더 많이 울고, 아프고, 힘든데 또 참고 버틴다. 그런 삶에서, 그런 나로부터 돌아서는 과정에서 나는 또 울고, 아프고, 힘들지만 버텨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온몸에 긴장과 불안이 감돈다.
연고를 바른다. 손가락으로 문장을 읽는다.
‘저, 잘 참아요.’
스스로에게 울면서 대답했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