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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섭 Jun 15. 2023

시 : < 유월의 강 물결 >

< 유월의 강 물결 >


올해의 유월에도

강물은 푸르게 흘러만 갔습니다.


먹고 마시며 새들처럼 노래하고

계절 따라 춤추면서 지내다 보면

풍요의 맛도 넉넉할 텐데

강물도 덩달아 푸르지 않겠습니까.

신나게 뛰노는 물고기들 좀 보세요.


하지만, 달리는 유람선아래

거품을 뿜어 대는 저 물결 소리는

흥겨운 노랫가락이 결코 아니랍니다.


갈 곳을 잃은 전설 속 영혼들이

아물지 못한 상처마저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새로운 설움의 악몽에 시달려

울며불며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꽃봉오리 익어갈 때

미처 피워 보지도 못하고 떨어진

무궁화의 설익은 꽃잎마다

화약을 말아 산산이 태워 버린 화랑연기는

세월에 묻혀 사라졌지만


내 부모, 내 형제와 이웃이

끊어진 다리 밑에서 아우성치던 그 해 유월

술렁이던 강물은

붉은 빛으로 물들여져 있었습니다.


아시나요?

흐르는 강물이 붉어지려면

봉숭아보다도 더 짙은 한 서린 피를

수천 년 조상들이 흘렸던 눈물보다도

훨씬 더 많이 뿌려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똑같이 유월을 지나며 흐르지만

지금은 한 없이,

한 없이 푸르기만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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