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끝나지 않은 약속_03

by 이종섭

3.


치료와 재활훈련까지 모두 끝나고 팀에 합류한지 만 두 달이 되는 날, 그날은 5월의 시작을 알리는 첫 게임이었다. 지수는 교체멤버로 후반전 25분이 지날 무렵 투입되었는데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풀백 범근이 형이 패스한 것을 동철이가 받아 드리볼 하며 치고 들어갔다. 지수는 그 오른쪽으로 1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따라가는데 질주하던 동철이가 페널티 부근에서 갑자기 멈칫 하더니 왼 쪽으로 수비를 제치고는 강력한 슛을 날렸다. 놀란 키퍼는 쓰러지면서 황급히 주먹으로 막아 냈으나, 튕겨져 나온 볼은 정신없이 뒤따라 들어가던 지수의 왼쪽 다리에 맞고 때굴때굴 골문으로 굴러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골 세르모니는 생략하였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공로도 아니었거니와 골을 넣은 직후 선아 생각이 떠올라 그만 쑥스럽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난 이제 비록 한 명이지만 팬이 있어. 팬을 가진 스타는 겸손해야 돼.’


그 골은 그날 경기의 승리를 확정짓는 결정 골이 되고 말았다. 다음 날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난 지수는 선아를 생각하며 꺼 놓았던 핸드폰을 켰다. 예상한대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추카!약속안잊었죠?오늘야구구경시켜줘요.선아가.. 010-xxxx-yyyy’

‘그래, 아무리 허기진 연봉에 시달리는 무명선수라도 그거 하나 서비스 못하겠냐?’


전화를 걸고 약속장소에서 만났다. 커피를 한 잔 마신 다음, 선아가 좋아하는 야구 경기장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날씨는 제법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오빤 누굴 좋아해요?”

“으... 응?”


사실 지수는 야구에 문외한이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대답은 못하고 얼굴을 쳐다보니 선아의 안색이 무척 창백해 보였다. 종전보다 길어진 머리칼이 가끔씩 불어대는 산들바람에 목을 휘감으며 나풀거리는데, 땀방울에 지워지는 화장기 안으로 거친 피부가 군데군데 들어나고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입술 안쪽으로 들여다보이는 립스틱 지워진 자리도 파란색에 가까웠다.


“근데 어디 아파?”

“....”

“얼굴빛이 안 좋은데?”

“아니... 괘 괜찮아요.”

“그래? 난 또 어디 아픈가 해서... 덥지? 조금만 기다려”


들었던 부채를 선아에게 쥐어주고 매점으로 달려가 과자와 음료수를 사가지고 다시 왔을 때는 이미 경기가 시작되고 난 후였다. 음료수와 과자를 즐기며 경기를 관람하던 선아는 어느 새 비스듬히 지수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4회전이 모두 끝나고 5회초, 타석에 들어선 5번 타자 심성환, 노아웃, 투볼 투스트라이크, 제 5구... 이때 우익수 박주영 선수는 외야 우측 중간 지점에서 양 손을 무릎에 댄 채 허리를 굽히어 타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오른쪽 펜스를 향해 날아갔다. 순간 수비수 박주영은 공은 쳐다보지도 않고 펜스를 향해 정신없이 뛰어갔다. 펜스에 다가설 즈음 획 돌아서서 기다리니 공이 떨어지는 위치가 정확하게 바로 그 자리였다. 우익수 플라이 아웃! 난생 처음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지수는 눈동자가 커지면서 뒷머리에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힘껏 무릎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맞아, 바로 저거야. 저거...”


깜짝 놀란 선아가 기댔던 지수의 몸에서 떨어졌다.


“뭘요?”

“아... 미안... 놀랬구나. 야구선수들 정말 대단하다.”

“오빠도 야구 좋아?”

“나도 야구팬 될 거 같은데, 그럼 우린 이제 같은 팬인가?”


지수는 자신이 뛰는 그라운드를 생각하였다. 수비수가 상대진영으로 깊숙이 공을 차 주었을 때, 저 선수처럼 차는 순간 떨어질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이후는 공을 보지 않고도 전력 질주할 수만 있다면 열 번 중 일고여덟 번은 상대보다 먼저 위치를 선점함으로써 공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아군진영에서 패스와 드리볼로 미드필드를 넘어가다 자칫 상대방에게 볼을 빼앗겨 역공을 당하게 되는 것도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의 악의적인 태클에 의한 부상도 예방할 수 있어 일거양득의 아이디어 아닌가.


“맞아, 저걸 연습해야 해. 저걸...”


이어 9회말, 주자 1루 원아웃, 3번 타자 강대구 투 원, 제 3구, 스윙~... 한 방에 끝낼 것처럼 엄청난 힘으로 휘둘렀음에도 배트는 허공만을 갈랐다. 스트락 아웃!

아쉬워하는 어느 팬의 탄식 석인 대화가 들렸다.


“저거 맞았다면 홈런 아냐?”

“안 맞았으니 데드볼만도 못하군.”


다음 타자는 4번 최승엽, 패색이 짙어가는 마지막 공격임에도 펜스 뒤 객석에서는 글러브를 낀 관중들이 넘어오는 홈런 볼을 잡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짧은 예비동작에 이어 투수의 손에서 공이 뿌려지는 가 싶더니만,

‘딱!’


또 다시 공은 경쾌한 음을 터트리며 공중을 향해 올라갔다. 역전 홈런을 직감하게 되는 순간 모든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날아가는 공을 주시하며 함성을 질러댔다. 선아도 일어나 지수의 몸을 부둥켜안으며 춤을 추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별로 힘들여 치는 것 같지 않았는데도 굽을 줄을 모르는 공은 계속 솟아올라 쭉쭉 뻗어가며 외야석 담장을 훌쩍 넘는 장외 홈런이 되고 말았다.


“됐어, 음흠... 그렇게 공을 넣어야 해.”

“무슨 말이야, 아까부터...”

“죽을힘을 다해 차서 강하게 골을 넣으나, 한 발 빠르고 정확하게 살짝 차서 골을 넣으나 한 골은 마찬가지 아닌가?”


한 편의 역전 드리마가 펼쳐졌던 경기장을 빠져나오니 다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야구경기는 생각보다 즐거웠고, 기뻐하던 선아의 모습만으로도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길을 걸으며 함께 잡은 선아의 손은 왠지 차갑게만 느껴졌다.


“오빠, 2014년에 월드컵이 열리지? 오빠 거기 나가면 좋겠다.”

“장난 하냐? 월드컵에 나가려면 국가대표가 되어야 하고, 국가대표가 되는 길은 바늘구멍보다 좁아. 선수들은 각 팀마다 철철 넘치는데 국가대표는 한 포지션에 서너 명에 불과하거든...”


사실 축구선수치고 월드컵에 출전하는 꿈을 안 꾼 자 없고 지수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팀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는 문제마저도 어려운 지경인데 무슨 월드컵을 꿈꾼단 말인가. 지수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한강에 처박히지 않는 게 다행이지.’


한참을 가다보니 어느 새 한강 둑을 걷고 있었다. 노을 속에 침몰하는 서녘 하늘은 강물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이며 알 수 없는 비극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였다. 선아는 지수의 팔을 잡고 매달리듯 한참을 걷다가 침묵을 끊으며 말을 걸었다.


“오빠 저기 풀밭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가자.”


쉬었다가자는 말에 얼굴을 쳐다보니 약물 중독자처럼 핏기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까 운동장에서부터 얼굴빛이 이상하다 했더니 아무래도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어디 아픈가보구나, 그래 여기 잠시 쉬었다 가자. 피곤하면 말 해.”


그리고는 손수건을 꺼내 풀섭에 깔아주고 지수 자신은 그냥 날바닥에 앉았다. 주위에는 철 지난 냉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작은 키에 선아의 얼굴처럼 여리고 하얀 꽃, 그곳에는 여러 마리의 꿀벌들이 잡초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간혹 걸려있는 거미줄을 피해 아슬아슬 날아다니고 있었다.


“오빠 저것 좀 봐, 난 냉이꽃이 너무 좋아.”


그리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지수는 쓰러지듯 자신의 가슴에 기댄 선아를 오른팔로 껴안고 재차 물었다.


“안되겠다. 많이 아픈가본데, 근처 병원에라도 가야겠다. 가자, 응?”

“아냐 오빠, 괜찮아, 사실은....”

“사실은...?”

“나 고백할까봐...”

“고백? 뭔데?”

“놀라지 마, 오빠. 약속해.”

“그래 말해봐. 지금 진정하고 있어. 이제 우린 같은 팬이잖아.”


선아의 눈빛은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사실 난 오래 못산데. 얼마 안 있어 죽을 거야.”

“응? 무...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런 농담을 함부로...”

“난...”

“...”

“난 백혈병에 걸렸단 말이야. 말기라서 이젠 항암치료도 포기했거든. 학교도 힘들어서 그만 뒀구...”

“배... 백혈병?”

“만성 림프성 백혈병 말기.”


지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냥 하는 말 같기도 하고 진심 같기고 한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옳을지 말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었다. 두 뺨 위에 홍수처럼 넘쳐나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주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랬구나. 지금 많이 아파?”

“아니, 지금은 괜찮아. 모처럼 만나 이런 얘기해서 미안해, 오빠”

“아냐 솔직해서 좋아, 아니 좀 더 일찍 말하지 그랬어. 그래도 치료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소용없대. 난 그때그때 응급조치만 하고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최승엽 선수가 홈런 치는 광경을 보았거든.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갈 때...”

“올라갈 때?”

“그때 갑자기 머리가 상쾌해지고 힘이 생기는 것 같았어.”

“그래서 최승엽 선수를 좋아하는구나.”

“응, 난 그 후 최승엽이 출전하는 게임이 있을 때마다 가급적 운동장을 찾았어.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있잖아...”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복받치는 설움에 열여섯 어린 소녀의 안타까운 감정은 속일 수가 없었다. 지수는 가슴에 따듯한 체온을 느끼며 살며시 두 손으로 감싸주었다.


“천천히 얘기 해.”

“의사는 날보고 여섯 달밖에 못산다고 했어. 힘든 일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난 홈런만 보면 힘이 나고, 운동장에 가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아 오빠와 함께 있잖아, 죽을 거라는 때가 1년이 넘었는데두.....”

“그렇구나. 언제 또 야구구경 시켜줄까?”

“아니... 그것두 이젠 별룬가 봐. 이젠 톱스타보다 꼴지가 좋아. 나 하나에게만 관심을 줄 수 있는 오빠 같은 꼴지... 골을 못 넣어도 이 냉이꽃처럼 날 비웃지 않아서 좋구, 골 넣으면 나에게 힘이 생겨서 좋구...”

“힘이 생긴다...? 그래, 다음번엔 선아를 위해 골을 넣을게, 못 넣어도 실망하진 마, 난 어차피 무명 꼴찌니까. 하하하.”


지수의 웃음소리를 들은 선아는 잠시 얼굴이 펴지는 것 같았다. 기댄 몸을 곧추세우고는 물기가 채 마르지도 않은 눈동자로 지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이 부딪힐 때마다 지수는 더욱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애를 써 보았다. 그리고 부상 후유증에 의해 휘어진 왼손 검지손가락으로 꽃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용기를 가져, 선아는 절대 죽지 않아. 저 냉이꽃 좀 봐, 저렇게 가냘퍼도 싱싱하기만 하잖아?”

“근데 오빠, 이담에 유명해져도 날 만나줄 수 있을까?”

“무슨 소리야? 선아는 내 처음이자 유일한 팬이라구. 내가 설령 월드컵에 나가 스타가 된다 해도 결코 선아는 잊을 수 없지.”

“월드컵? 와~ 정말 좋다. 오빠 모습 상상만 해도 날아갈 것만 같애...”

“아 아니 말하자면 그렇다는...”

“그냥 생각인데, 만약 오빠가 정말로 월드컵에 나가 골을 넣으면... 그래도 날 생각할 수 있을까? 왠지 무섭다. 그땐 너무 유명해졌을 텐데...”

갑자기 선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수는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싶었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는 없었다.

“걱정 마, 만약 말이야, 만약인데 말이야...”

“만약...?”

“만약... 이건 가정인데 말이야, 내가 월드컵에 나간다면, 게다가 골 까지 넣는다면...”

“야~, 그럼 그 공 나에게 선물할 수 있어, 오빠?”

“아... 아니 그... 공은 선수가 못 가져가고, 그 대신 신고 있던 축구화와 티를 몽땅 벗어서 선아에게 기념으로 줄께. 그건 나의 전부니까.”

“정말? 너무 좋다. 신발은 진열장에 넣고, 티는 내 방에 걸어 놓을 거야, 절대 빨지 마, 오빠의 땀이 물신 배어있는 그대로가 좋아. 오빠가 생각 날 때마다 난 그 냄새를 맡을 거야.”


갈수록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한 지수는 후회하기도 하였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래 좋아, 이번 아니면 다음번, 그것도 아니면 다 다음번 월드컵에 꼭 나가고 말거야. 선아가 있는 한 말이야. 그리고 돌아오는 날 우리 공항에서 만나자, 응? 인천공항 C주차장 건너편 분수대 앞에서 말이야.”


차라리 지키지 못할지라도 우선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야 삶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해질테니까. 말을 끝내고 얼굴을 쳐다보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백혈병이라니, 이렇게 착한 소녀가 한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지수는 헤어져 숙소에 돌아와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 내가 살고 선아가 사는 길, 우리 모두 사는 길은 내가 스타가 되는 것뿐이야. 난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까 보았잖아, 공이 공중에 솟았을 때 보지 않고 낙하지점을 향해 신속히 그리고 정확하게 찾아가 기다리는 것, 힘들여 치지 않고도 정확하게 맞춰 담장을 넘기는 것, 잡초 사이 도처에 쳐놓은 거미줄을 피해 냉이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유연한 꿀벌이 되어야 해.’


눈을 감고 비디오 녹화 테이프로 보았던 세계 스타들의 경기장면들도 떠올렸다. 한 번도 뻥뻥 차는 것 없이 아슬아슬 피해가며 살짝 살짝 밀어 넣던 펠레의 모습, 뒤뚱거리듯 거친 태클을 피하면서 공을 놓치지 않았던 마라도나 선수...


‘바로 그거야. 나에게 프리킥은 필요 없어. 반칙을 유도해서 프리킥을 얻어내는 것보다 태클을 피하면서 공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해. 멀리 날아오는 공은 보지 않고도 먼저 뛰어갈 수 있어야 내 공이 되는 거지.

골문 앞에서는 흥분하지 말아야 해. 공이 골문을 빗겨나가서는 안되니깐 오로지 살짝 밀어 넣듯 냉정을 잃지 말고 정확하게만 차야 해. 그러면 틀림없이 확률은 높다. 확률! 확률! 확률은 높아진다구!!!’


벌떡 일어나 일기장을 꺼내 큼직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래오래 버텨줘, 약속 꼭 지킬 깨.

장소 : 인천공항 C주차장 건너편 분수대 앞.

때 : 몰라,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준비물 : 축구화, 땀에 절은 티.’


4.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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